아름다운 사진집입니다. 화면이 감각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외롭지만 따뜻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이 작가의 독특한 점은 화면 속 아파트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3D 모델링으로 아파트를 만들고, 거기에 계절과 시간을 넣어 렌더링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작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의 낡은 복도를 떠올릴 수도 있고, 늦은 오후 하교 후 조용한 단지를 거닐 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아파트에는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고, 기억도 없고, 정지한 세계를 보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신들의 기억을 집어 넣어 이미지를 감상하게 된다는 것. 따뜻하지만 실제론 비어있다는 것. 거기서 오는 외로운 마음이 참 마음에 듭니다.
이 작가의 사진집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더 크고, 좋은 인화지에, 두꺼운 A3 사이즈 양장본으로 감상하고 싶습니다. 빨리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