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라는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간의 이미지를 붙잡아 적어둔 이 짧은 글은 '글'이 아니라 '길'일지도 모른다.
발목까지 잠긴 슬픔의 광경을 지나고 나면 그가 그토록 보여주고 싶어 했던 꽃밭 에 다다를지도.
본문 일부
그때 잡지 못했던 당신의 손이 나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 높이 나는 새가 나를 비웃는다. 아직도 바람이 불고 나는 공항 벤치 에 앉아있다. 떠나지도, 떠오르지도 못하는 하루. 마음 무거운 철새는 어디로 가야할까. 허공을 붙잡아 본다. 아무 것도 없는, 당신 없는 먼 허공.
입 속의 금귤 씨를 혀로 굴려본다. 과육이 휩쓸고 간 작은 우주에서 자전도 공전도 않는 씨앗을. 그리고 또 한 알의 금귤로 맛보는 황홀한 빅뱅.
어젯밤 꿈에서는 당신의 청첩장을 받았다. 다시 꿈을 꾸지 않으면 그 결혼식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젯밤 꿈에서는 ‘꽃을 살 돈이 없어, 그녀의 손을 잡고 꽃밭으로 달려갔다’는 사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을 기억하는 것보다 처음을 떠올리는 게 더 쉬워. 마지막이 너무 어려웠던 탓이었을까. 마지막 날도 처음 만난 그 날도 하늘은 너무 시퍼래서 가을은 참 서늘한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한때는 상쾌한 기분을 느꼈던 가을이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져. 그만큼 너에게 많이 베었던 걸까. 함께한 날들에 물들었던 걸까.
지은이: 정맑음
펴낸곳: 다시서점
편집 디자인: 김선영
판형: 125x182mm
페이지: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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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입고] 나는 너라는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