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고] 음악 없는 말

28,000원
지은이 : 필립 글래스

옮긴이 : 이석호

원제 : Words without Music

판형 : 148 x 220 mm

제본 : 무선제본

면수 : 568

ISBN : 979-11-959499-5-3 03840

발행처 :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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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없는 말

현대 미니멀리즘 음악의 살아 있는 거장, 필립 글래스 자서전 뉴욕의 택시 운전사에서 현대음악의 거장이 되기까지, 필립 글래스가 이야기하는 그의 삶과 음악

 

 

> 필립 글래스라는 숲

 

『음악 없는 말』은 현대 미니멀리즘 음악계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필립 글래스Philip Glass(1937∼ )가 자신의 예술 세계와 삶의 여정을 써 내려간 회고록이다. 올해로 여든에 이른 한 노음악가가 음악이 아닌 말로써 그린 이 자화상에는 그가 통과해 온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담담하고 절제된 톤으로 담겨 있다.

필립 글래스는, 역사상 가장 전위적인 오페라로 평가받는 「해변의 아인슈타인」과 「미녀와 야수」 등을 비롯하여, 각각 열한 개의 교향곡과 협주곡 이외에도 수많은 실내악곡 등을 쓰며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 주었다. 또한 그 스스로는 ‘고전주의자’라 부르면서도 장르의 경계를 초월하여 다채롭고 자유로운 행보를 보인 바, 「디 아워스」, 「쿤둔」, 「트루먼 쇼」, 「일루셔니스트」,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등의 영화음악 작업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데이비드 보위, 패티 스미스, 브라이언 이노, 폴 사이먼, 믹 재거, 레너드 코헨 같은 대중음악인들과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아가 라비 샹카르, 알라 라카, 포데이 무사 수소, 마크 앳킨스 같은 비서구 음악인들과도 활발히 교유하며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우리는 그의 음악을 오페라 하우스나 콘서트홀뿐만 아니라 영화관이나 극장에서도 곧잘 들을 수 있다.

필립 글래스의 작품 밑바탕에는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루크너 같은 서양 고전 음악의 유산은 물론, 미국 전위음악의 핵심인 존 케이즈에서부터 비밥, 로큰롤, 제3세계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이 녹아들어 있다. 음악적 유산뿐만이 아니다. 비트 문학, 철학, 과학, 헤르만 헤세, 티베트 불교, 요가, 명상, 채식, 도가의 기공, 멕시코의 톨텍 문화, 유럽발 실험 연극과 댄스, 누벨바그 영화, 뉴욕 다운타운 미술 등 여러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유산 또한 그의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마치 수많은 수종이 들어찬 거대한 숲을 보는 듯한 그의 세계는, 그만큼 그 영향력도 넓고 깊어서 우리 시대의 음악을 논할 때면 반드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립 글래스는 『음악 없는 말』에서 이러한 자신의 궤적을 마치 제3자에 대해 말하듯 어떤 과시적 제스처나 미화 없이 편안하게 들려준다.

 

 

> 볼티모어에서 파리까지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여러 원천과 닿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일찍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1937년, 볼티모어의 한 넉넉지 못한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부터 플루트를 배운 한편으로 열한 살 때부터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 일을 거들며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을 폭넓게 들었다. 또한 바르톡,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곡을 접한 것도 그때였다. 당시 이 음악가들의 레코드판은 잘 나가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파고들다가 결국 현대음악의 전도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어린 글래스도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현대음악을 귀동냥할 수 있었는데, 특히 ‘아버지 몰래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밤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퍽 아름답게 다가온다.

 

“아버지가 틀어 놓은 음악을 몰래 들으면서 내 귀도 좀 트였다. 우리 집은 볼티모어 다운타운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립주택이었고, 형과 나의 침실은 거실 바로 위에 있었다.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계단 중간쯤에 걸터앉아 한참을 귀 기울였다. 아버지가 고개만 돌리면 들킬 위치였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알고도 내버려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밤을 헤아릴 수 없었다.”(60쪽)

 

이어 열다섯에 시카고 대학 조기 입학 대상자로 선정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 필립 글래스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지적, 문화적 체험을 한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수학, 사회과학 등을 두루 파고드는가 하면, 시카고라는 도시가 제공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닥치는 대로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데, 이는 훗날 그의 음악 세계로도 면면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

시카고 시절에서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그의 재즈 편력기다. 버드 파월,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델로니어스 몽크, 레드 갈란드, 스탠 게츠,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오넷 콜맨 등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재즈의 거인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필립 글래스는 현대 재즈의 진수를 흠뻑 빨아들였다. 시종 차분한 어조로 삶을 돌아보는 그이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그도 그 시절의 청년으로 돌아간 것마냥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가게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고전적 실내악과 더불어 시카고 시절에 심취한 재즈가 이후 그의 음악을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 인생은 대학 졸업 후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가면서 마침내 첫 닻을 올린다. 음악으로 오롯이 채워진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 부모님의 낭패감과 염려마저 뒤로 하고 뉴욕으로 간 그는, 윌리엄 버그스마와 빈센트 퍼시케티를 사사하는 가운데 작곡 수업과 훈련을 부지런히 밟아 나간다. 줄리아드의 필수 과정인 합창단 활동 역시 작법에 필요한 기초를 두루 다지는 데 알찬 밑거름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시절에 몸에 들인 습관, 즉 오전 열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는 무조건 피아노 앞에 앉아 공부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뮤즈의 활동을 엄격히 금하도록 한 것은 그의 평생을 지배하는데,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생산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주변 예술에 대한 관심도 깊었던 그는,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뉴욕 다운타운 미술계(특히 추상표현주의)와 공연계, 그리고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초월을 추구하는 비트 문학 등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와 동시대를 살며 현대 예술의 지형을 바꾸는 데 심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에이즈라는 재앙 앞에 우수수 떨어져 나간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바치는 애도는 가만히 가슴을 적신다.  이 책의 1부는 파리 시절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줄리아드를 졸업하고 파리로 건너간 필립 글래스는 걸출한 두 스승을 만나면서 비로소 든든한 음악적 받침목을 획득한다.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유명한 나디아 불랑제와, 시타르 명인으로서 인도 고전음악을 서구에 알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라비 샹카르가 바로 그들이다. 불랑제 선생은 무엇보다도 음악가가 갖추어야 할 확실한 연장통을, 라비 샹카르는 비서구 음악에 눈뜨게 하는 한편으로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선사했다.

한편 파리 시절은 필립 글래스에게 유럽 현대 예술의 최전선을 경험하게 한 장이기도 했다. 고다르와 트뤼포가 주도하는 누벨바그 영화며, 현대음악의 또 다른 거장인 피에르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의 음악, 그리고 피터 브룩과 그로토프스키로 대변되는 실험적 연극 등이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유럽의 전위적 예술을 깊이 빨아들이는 가운데 필립 글래스는 리 브루어 등과 함께 대안적 실험 극단을 태동시키기도 했으니, 바로 훗날 ‘마부 마인스’라고 명명될 극단이다.

필립 글래스가 연극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조앤 아칼라이티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필립 글래스는 지금까지 네 번 결혼하여 슬하에 네 아이를 두었다. 이 책에서 그는 첫 번째 아내인 조앤과 사별한 아내인 캔디 저니건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마부 마인스 창단의 주역이기도 한 조앤은 연극감독이자 대본 작가로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뉴욕의 실험적 연극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파리 시절에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헤어진 뒤에도 예술적 동지로서의 인연을 끈끈히 이어 오고 있다.

 

 

> 뉴욕의 소리

 

필립 글래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세 개의 공간을 들자면 파리, 인도, 뉴욕이 될 것이다. 이 책의 2부와 3부에는 파리와 인도에서 돌아와 본격적으로 직업 음악인으로서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67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필립 글래스는 자기만의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모색해 갔다. 그는 음악이 전달할지도 모르는 ‘이야기’ 대신 음악 그 자체의 문법에 뿌리를 둔 언어를 찾고자 했다. 단순한 요소의 반복과 변주에 토대한 미니멀리즘 음악이 그 해법으로 제시되었고, 이러한 방향성은 초기작인 「하우 나우How Now」, 「스트렁 아웃Strung Out」, 「단계Gradus」, 「병진행하는 음악」, 「정면충돌」, 「5도 음악」 등에 잘 천명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의 음악이 그저 지루하게 반복되기만 한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항변한다.

 

“내 음악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그저 시종 반복되기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만약 그저 반복적인 음악이라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내 음악을 들어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변화다. 〔중략〕 「병진행하는 음악」이나 다른 여러 초기작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그것들이 흥미로운 점은 하나같이 있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다는 데 있다.”(320쪽)

 

고도로 미니멀하고 반복적인 음악을 확립해 가던 그는,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통해 가장 완전한 형태로 그 결실을 본다. 전통적 서사 대신 아인슈타인에게서 연상되는 세 가지 이미지를 반복하고 변주하는 이 작품은 이제는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이 작품을 필두로 「사티아그라하」, 「아크나톤」도 이어서 제작되면서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을 다룬 ‘초상 오페라 삼부작’이 탄생했는데, 이는 1990년대에 만든 또 다른 연작 ‘콕토 3부작’과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필립 글래스는 생계를 위해 해 온 밑바닥 노동을 당장 그만두지 못한다. 이미 줄리아드 시절부터 철강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트럭에 짐 싣는 일을 했다. 파리에서 돌아온 뒤에는 이삿짐센터 일, 배관 일, 택시 운전을 이어 가는 가운데 노동과 예술이라는 두 세계를 쉼 없이 오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찢김’으로 인식하지 않고 낙천적이고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에게 뉴욕은 예술의 현장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골골이 누볐을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의 음악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기에 “당신의 음악은 어떻게 들립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곧잘 이렇게 답한다.  “내게는 뉴욕의 소리처럼 들립니다.”  본 책의 말미에는 필립 글래스의 궤적을 일별할 수 있도록 작품 목록 전체를 연대별로 정리하여 수록했다.

 

이 책에 대한 각계의 반응과 리뷰

 

- 필립 글래스는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다. 다른 민족의 음악, 대중음악의 문법, 영화나 대중 매체들과의 결합 등을 다양하게 시도하며 외연을 넓혀 가면서도 자기만의 스타일과 세계를 굳건하게 지켜 낸다. 그의 세계는 늘 비슷한 듯 다르고, 계속 반복하면서 끝없이 발전하는, 중독과 최면의 메커니즘에 의해 저절로 증식하는 거대한 숲이다.(박찬욱, 영화감독)

 

- 나는 어떤 비평적 자극이나 안내가 없는 상태로 매우 단순하게 필립 글래스의 음악에 다가갔고, 꼼짝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와 나는 영화「쿤둔」작업을 함께했고, 그것은 아주 흥미로웠다. 그는 진정으로 초월적인 음악을 선사함으로써 내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필립 글래스는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서전을 통해 다시 한 번 내 기대를 넘어섰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글 쓰는 사람으로도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마틴 스콜세지, 영화감독)

 

- 『음악 없는 말』은 가장 영감을 주는 책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에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문화란 세월을 거치며 이어져 온 생각과 다름없다는 필립 글래스의 시각은 무릎을 치게 한다. 음악과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즐겁고 감동적이며 심오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로리 앤더슨, 전위예술가)

 

- 필립 글래스는 가족과 스승들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에 대해 매력적으로 술회해 간다. 『음악 없는 말』은 음악인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폴 사이먼, 싱어송라이터)

 

- 필립 글래스는 솜씨 좋고 상당히 위트 있는 작가다.(「가디언」)

 

- 따뜻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종종 유쾌하기도 한 회고록.(「뉴욕타임스」)

 

- 그의 음악처럼 그의 글도 단순하고 정직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점진적으로 신비한 매력을 보여 준다.(「뉴욕타임스」)

 

- 필립 글래스의 음악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 준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선택과 미학을 옹호하는 데 언제나 단호하다. 그의 음악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미묘한 복잡성을 품고 있다.(「워싱턴포스트」)

 

- 미니멀리즘 음악을 대표하는 필립 글래스는 민족 음악과 서구의 고전 음악 간의 경계를 거부한 최초의 작곡가들 중 한 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어떻게 작곡을 선형적인 서사로서가 아니라 점진적인 리듬의 연속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뉴욕타임스」)

 

- 지난 반세기 동안 발전해 온 아방가르드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음악 없는 말』은 문화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댈러스모닝뉴스」)

 

- 미국의 음악, 아니 미국의 문화에서 누구보다도 주목할 만한 궤적을 보여 준 자신에 대한 익살스러운 관찰과 꾸밈없는 평가. 정직하고 자연스럽다.(「보스턴글로브」)

 

책 속으로

 

- 대학을 갓 졸업하고는 ‘진짜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잔뜩 안달이 나 있었다. 내게 진짜 인생이란 곧 음악가로서의 삶이라는 것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머리가 굵기도 전부터 이미 음악에 끌리고 있었고, 거기에 강한 유대감을 느꼈으며, 그것이 곧 나의 길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34쪽)

 

- 아버지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감식안을 쌓아 갔고, 결국에는 실내악을 비롯한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세련되고 풍부한 식견을 갖추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안락의자에 앉아 거의 자정까지 음악을 들었다. 아버지가 틀어 놓은 음악을 몰래 들으면서 내 귀도 좀 트였다. 우리 집은 볼티모어 다운타운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립주택이었고, 형과 나의 침실은 거실 바로 위에 있었다.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계단 중간쯤에 걸터앉아 한참을 귀 기울였다. 아버지가 고개만 돌리면 들킬 위치였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알고도 내버려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밤을 헤아릴 수 없었다.(60쪽)

 

- 찰리 파커는 젊은 시절 내가 가장 존경한 천재였다. 아직 비하이브에 출입할 수 없었던 시절, 나는 창문 너머로 그를 여러 번 보았다. 내게 찰리 파커는 비밥의 바흐였다. 그처럼 색소폰을 부는 사람은 달리 없었다. 그의 알토 연주는 ‘끝내준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대단했다.(82쪽)

 

- 그다음으로 내 심장을 달군 음악가는 존 콜트레인이었다. 그는 「마이 페이버릿 싱스My Favorite Things」 선율을 가지고 거기에 담겨 있을 것이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화음을 끌어내는 솜씨의 소유자였다. 이런 솜씨에 힘입어 콜트레인은 선율이건 리듬이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가 하면, 선율에 내재된 화음을 자유자재로 갖다 붙이는 기교를 발휘했다. 이런 기량이 음악의 표면 위로 떠오를 때면 듣는 이는 숨이 컥 막히는 것 같은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의 고삐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먼 곳으로 훌쩍 날아가는가 싶다가도 기실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지 않은, 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음악이 가능했던 것이다. 콜트레인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비밥 뮤지션이었다.(82∼83쪽)

 

- 유럽 예술 음악이 가진 소리의 세계는 어린 시절부터 내 안의 한 부분을 단단히 차지했다. 특히 실내악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영향이 내 음악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거의 50년의 세월이 흘러 소나타나 무반주 현악곡을 쓰면서부터다.(89쪽)

 

- 돌아보면 비밥이 지닌 날것 그대로의 힘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그 추진력 — 음악 자체에 깃든 생명력 — 이 나를 매료시켰다. 트리스태노뿐만 아니라 존 콜트레인이나 버드 파월의 음악도 그러했다. 재키 매클레인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고, 찰리 파커 역시 그러했다. 멈출 수 없는 자연의 힘 같은 에너지가 비밥에는 있었다.(91쪽)

 

- 곡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음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골몰히 생각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책을 뒤져 보아도,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애초부터 상관없는 물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답을 구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문득, 작곡을 해 보면 어떻게든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97쪽)

 

- 어떤 경로로든 브루크너 사운드가 내 정신 어딘가에 들어와 꽂혔던 모양이다. 브루크너의 음악을 들으며 통째로 소화했고, 그것은 그렇게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사티아그라하」 같은 오페라를 쓸 때는 부지불식간에 브루크너와 비슷한 종류의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을 구사하기도 했다.(104쪽)

 

- 그런 면에서는 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돈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벌면 그만일 뿐이라는 주의였다. 공장 일도 실제로 무척 즐기며 했다. 돈에 대한 이러한 자세는 실로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1978년 마흔하나의 나이에야 네덜란드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사티아그라하」를 위촉받으면서 비로소 전업 음악가로서 생계를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음악 이외의 일을 한 세월이 도합 24년이었지만, 한 번도 그런 형편이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삶에 대한 호기심이 언제나 우선했기에 일하면서 느꼈을 어떤 모멸감도 이겨 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현실을 직시하는 눈치가 빨랐던 셈이다.(117쪽)

 

- 해프닝happening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해프닝과 관련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상하면 이상할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예술과 공연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막 깡통을 열고 꺼낸 것만 같은 신선한 예술을 가장 사랑한다.(132쪽)

 

- 훈련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했다. 피아노 위에 시계를 올려놓고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오선지를 펼쳐 놓는다. 그러고는 열 시부터 한 시까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음표를 하나라도 적어 넣거나 말거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훈련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그 세 시간 동안을 제외한 다른 때에는 곡을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미리 정한 시간에만 활동하게 하고 그 외에는 멈추게 함으로써 내 뮤즈를 길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146쪽)

 

- “라비지,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그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사진을 가리켰다. 사진 속에는 나이 지긋한 인도 신사가 전통 복장을 입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라비지는 양손을 가지런히 합장하고 사진을 향해 큰절을 했다. “나를 가르치신 스승님의 은혜 덕분에 그분의 음악에 담긴 힘이 내게로도 이어졌다네.”(211쪽)

 

- 파리 시절 나는 불랑제 선생님과 라비지에게 음악과 인생 전반에 대해 통찰하는 법을 수도 없이 배웠다. 마치 두 명의 수호천사가 내 양쪽 어깨에 내려앉아 지혜를 일러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비지는 사랑을 통해서, 불랑제 선생님은 두려움을 통해 가르쳤다. 확실히 이 두 분 덕택으로 나는 내 음악적 수련기를 공식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231쪽)

 

- 케이지와 베케트 같은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그들이 다 해 놓은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관념을 굳이 우리가 나서서 파괴할 필요가 없었다. 베케트가 이미 『몰로이』와 『말론은 죽다』에서 그리했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케이지와 베케트는 우리가 한판 시원하게 놀 수 있도록 터를 닦아 준 존재였다. 우리는 그 수혜자였던 셈이다.(309쪽)

 

- 핸들을 잡고 하룻저녁 도시를 누비다 보면 흥미진진한 일도 겪었다. 일례로 어느 날 밤에는 57가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탑승한 적이 있었다. 목적지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세인트 레지스 호텔이었다. 하늘을 향한 콧수염 하며 영락없는 달리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고작 몇 블록 떨어진 행선지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무슨 말이라도 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391쪽)

 

- 음악을 파는 일이라면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레코드를 팔아 온 나였다. 손님이 5달러를 지불하면 레코드를 한 장 내어 주는 광경이 내게는 조금의 위화감도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거래의 과정을 물리도록 봐 온 것이다. 돈을 음악과 바꾸어 가고 또 음악이 돈이 되는 일련의 흐름이 본능처럼 각인되었던 것이다. 아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거로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399∼400쪽)

 

- 나의 음악적 ‘홈베이스’에서부터 멀리 멀리 떨어져 나옴에 따라 세상 모든 음악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에스닉 뮤직, 즉 민족음악임을 알게 되었다.(478쪽)

 

 

차례

 

제1부  볼티모어 시카고 줄리아드 파리 라비 샹카르 나디아 불랑제 동방 순례 리시케시, 카트만두, 다르질링 도모 계곡의 지혜로운 보석 카타칼리와 「사티아그라하」 네 가지 길

 

제2부  뉴욕으로 돌아오다 연주자로 데뷔하다 미술과 음악 케이프브레턴 뉴욕의 이스트빌리지 「해변의 아인슈타인」

 

제3부  오페라 음악과 영화 캔디 저니건 콕토 삼부작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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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 |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년, 미국 볼티모어의 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라디오 수리점과 레코드 가게를 같이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여러 음악을 접했으며, 여덟 살 때부터는 플루트를 배웠다. 열다섯 살에 시카고 대학에 조기 입학을 한 필립 글래스는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 다방면으로 풍성한 지적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한편으로, 버드 파월,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등 당시 시카고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도 심취했다. 그뿐만 아니라 베베른, 베르크 같은 이들의 현대음악과도 본격적으로 만났으며, 브루크너의 음악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여기에서 그는 윌리엄 버그스마와 빈센트 퍼시케티를 사사하는 가운데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작법에 필요한 바탕을 두루 다졌다. 그런 한편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뉴욕 다운타운 미술계와 공연계, 그리고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초월을 추구하는 비트 문학으로부터 문화적 세례를 받는다.

줄리아드를 졸업한 후 1964년에 파리로 건너간 필립 글래스는,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불리는 나디아 불랑제와 인도 음악의 거장인 라비 샹카르라는 두 스승을 사사함으로써 음악과 삶의 깊은 곳을 통찰하는 법을 배운다. 또한 베케트, 콕토, 누벨바그 영화, 아방가르드 댄스와 실험 연극 등 유럽 현대 예술의 최전선을 경험한다.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감행한 인도 여행 역시 그의 음악과 정신 세계를 이루어 갈 또 다른 주요 원천이 된다.

뉴욕으로 돌아와 전업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마흔이 넘도록 필립 글래스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밑바닥 노동과 예술의 세계를 쉼 없이 오갔다. 낮에는 이삿짐센터, 공사판, 배관, 택시 운전 등의 일을 했고, 밤에는 리 브루어 등과 만든 실험 극단인 마부 마인스의 일과 자신의 음악 작업을 부지런히 이어 갔다.

1968년에 첫 연주 공연을 한 이래로 핵심적인 리듬과 선율의 반복과 변주를 특징으로 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확립해 가던 그는, 1976년에 초연한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성공하면서 그 결실을 보았다. 이후 「사티아그라하」, 「아크나톤」을 차례로 올리면서 ‘초상 오페라 삼부작’을 완성했다. 1990년대에는 장 콕토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 삼부작인 「오르페우스」, 「미녀와 야수」, 「무서운 아이들」을 선보였다. 그 밖에도 영화 「코야니스카시」, 「쿤둔」, 「디 아워스」, 「일루셔니스트」, 「스토커」 등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옮긴이 | 이석호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지금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 전반과 관련된 좋은 책을 옮기고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왜 말러인가』, 『바그너, 그 삶과 음악』, 『드보르자크, 그 삶과 음악』, 『스트라빈스키, 그 삶과 음악』, 『버르토크, 그 삶과 음악』, 『로드리고, 그 삶과 음악』이 있다.

 

 

 

지은이 : 필립 글래스

옮긴이 : 이석호

원제 : Words without Music

판형 : 148 x 220 mm

제본 : 무선제본

면수 : 568

ISBN : 979-11-959499-5-3 03840

발행처 :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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