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고]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My Flowers are Near and Foreign

12,000원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옮긴이: 박혜란
출판사: 파시클
페이지: 170p
사이즈: 125x205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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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My Flowers are Near and Foreign

 

매혹의 기억이 만들어낸 것이 시라면

 

민들레의 가녀린 대롱에

풀들이 놀라고 —

겨울은 바로 무한의 탄식이 된다

대롱은 꽃눈의 신호를 들어올리니

그 다음에는 꽃의 함성 —

태양이 선포하니

이제, 그만 묻혀 있으라 —

 

매혹된 아름다움을 느낀 경험의 기억이 시가 된다.

매혹의 기억은 다시 아름다움이 되어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 시집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또 어떨까?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 네 번째 번역시집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선정하고 번역하여 출판하는 <파시클>에서 2020년 9월 3일 출판한 시집으로, 매혹 혹은 끌림, 아름다움을 쫓는 시선을 따라서 여름을 기다리는 계절에서 시작해 가을, 겨울로, 다시 봄이 되어 민들레를 기다리며 끝맺는, 8장으로 묶어 배열한 총 56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에 이어 네 번째이다.

 

<파시클>에서 내놓는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은 시인의 단어 선택, 시행 구분, 연 구조를 가급적 그대로 반영하여 원문 텍스트를 구성, 그를 바탕으로 번역하며 디킨슨의 필사 원고를 텍스트로 번역하였기에, 20세기에 출간된 디킨슨 전집들에 기반한 기존 번역들과는 시의 구성과 내용이 다소 달라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선하면서도 고전적인 디킨슨의 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 에밀리 디킨슨의 원문을 가능한 한 생생히 살리려는 번역자의 애정 어린 시선과 손길이 담겨 있다.

 

 

자연의 끌림

 

그대를 위해 나의 꽃을 키우고 있다 —

눈부시게 부재한 이여!

내 푸크시아의 산호색 봉재선이

튿어질 때 — 씨 뿌리는 이는 꿈꾸고 있다 —

 

디킨슨이 살았던 19세기 시인과 신학자, 철학자들에게 자연은 신학적, 철학적 사유와 창작을 위한 주된 소재이며 주제였던 것처럼 에밀리 디킨슨도 자연에 관한 시를 아주 많이 썼다. 시인의 집 정원과 과수원, 산책로와 저택 앞 가로수, 울타리 너머 초원과 숲, 언덕과 계곡에 핀 꽃과 나무, 새, 벌, 발밑을 지나는 벌레, 농장의 닭과 가축 등 시인의 일상을 함께 했던 모두가 시의 소재이고 주제였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신이 쓴 시와 직접 키운 꽃을 편지에 넣어 보내곤 하던 시인은 친구 엘리자베스 홀랜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원에 핀 꽃들을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고 했다. 디킨슨에게 자연은 늘 가까이 있으면서도, 문득 낯선 존재다. 때로는 철학자나 종교적 교리가 말한 자연관이 겹치기도 하지만 시는 익숙한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찰과 경험으로 익숙하고 가까이 있는 존재들의 낯섦과 특별함에 끌린 순간을 시에 옮겼다. 시가 수수께끼가 된 순간이다.

 

“이제, 그만 묻혀 있으라”

 

그녀의 상태는 서리 —

티리언이 올 때쯤이면

북에서 그에게 빌겠지 —

창조자여 — 내가 — 꽃을 피워도 되겠습니까?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는 앞서 출판된 시집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에 이어 여전히 아름답고도 독창적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자연을 거울삼아 보편적인 기준과 다른 자신을 통찰하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두 시집이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노래한다면, 여성주의의 시각이 특히 돋보이는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는 초지일관 자연에서 발견한 매혹, 끌림을 말하니 쉽게 읽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줄곧 읽어온 독자라면, 아니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역시, 시들을 한 편씩 읽어가다가, 작은 대상을 보는 시선이 이토록 솔직하고 수수한데도 어떤 이유로 이토록 가슴을 내내 크게 울리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온통 지뢰밭처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마음을 흔들며 터지는 시어의 폭죽.

민들레에게 “이제 그만 묻혀 있으라” 하는 봄날 태양의 선포란, 제가 이제 꽃을 피워도 되겠냐, 하는 질문에 대한 자연의 응답이고, 벽에 기대어져 어느 날이고 쓰일 날을 기다리는 “장전된 총”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중)의 소망이 아닌가.

 

보석과 같은 언어, 디킨슨이 제출한 수수께끼들

 

펼쳐놓은 찔레와 이파리 같은

그런 매복은 결코 없으니 —

백작의 수려한 얼굴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우아함을 입으리라 —

엑스터 공작보다는

차라리 그녀처럼 살리라 —(61쪽)

 

하려고만 들면 — 넘을 수도 있다 —

딸기는 좋으니까!

하지만 — 앞치마를 더럽히기라도 하면 —

신께서 분명 꾸짖으시겠지!

오, 친구야 — 그가 사내아이라고 상상해봤어 —

그도 — 할 수만 있다면 — 담을 넘었을 거야! (63쪽)

 

내가 자포자기했던 그날 —

이날을 — 만일 내가 잊는다면

당연히 — 밤일 텐데

해 저물어 —

어둠이 언덕을 차지하고 —

하늘을 차지한다. 그리고 눈을 흘기며 —

추억과 내 앞에서 —

자연은 주저하리라 — (87쪽)

 

정오에는 나비 두 마리 나타나 —

왈츠를 추며 농장 위를 맴돌더니 —

곧장 걸음을 옮겨 창공을 헤치다

어느 대들보 위에 깃들었다 —(115쪽)

 

저렇게 작은 꽃을 성가시게 하면 안 된다 —

다만 그것이 조용히

우리가 잃어버린 작은 정원을

다시 이 잔디밭으로 데려올 때는 예외다 —(137쪽)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평범한 것을 보고 말하지만 익숙하여 잘 안다고 여기는 것에서 낯선 면모를 발견하여 언제나 평범하지 않게, 늘상 시에서들 사용하는 어휘 말고 뜻밖의 언어를 발굴하여 말한다. 타성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작은 수수께끼가 되고 시인과 독자는 문제와 답을 주고받는 잔잔한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 되곤 한다.

 

익숙한 존재의 낯섦과 특별함에 끌린 순간

 

나의 나라와 — 다른 이들 사이에 —

바다가 하나 있지만 —

꽃들이 — 우리 사이에서 중재하는 —

직무를 다한다

 

번역자 박혜란은 아름다움, 이 매혹을 따르는 끌림의 까닭을 이렇게 짐작한다.

“아름다워 뭐하나 싶지만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의미와 가치들이 존재하는 방식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장식적 기교나 금방 사라질 찰나의 광휘나 혹 바스라질까 감히 만지지 못하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바로크 예술처럼 미확정의 도발과 돌출로 익숙함에 균열을 가져오고 예측을 불허하며 진실을 포착하는 경이의 순간 역시 미학적 대상이기도 하다.”

 

파시클과 번역

 

운명은 늙었고

행복에 인색하니

마이다스가 황금을 대하듯 하다 —

 

<파시클>은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내러티브 이론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 중 에밀리 디킨슨 시를 읽으며 점차 매료되어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꿔 연구해온 번역문학가 박혜란이 에밀리 디킨슨 시를 번역해 모아 한 권 한 권 시집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출판사다.

<파시클>은 앞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로 첫 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와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를 비롯해 그림시집 『멜로디의 섬광』 『어떤 비스듬 빛 하나』 『바람의 술꾼』 『장전된 총』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함께 출판한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를 더해 시선집 시리즈 네 권이 되었다.

‘파시클’은 에밀리 디킨슨이 필사한 자신의 시를 모아 손수 제본한 각각의 책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파시클의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에밀리 디킨슨을 보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 새로운 접근들

 

내가 선택한 적임자는 — 나를 외면하던 이였다 —

남은 이들이 모두 사망했다 —

세상을 떠난 나의 단짝들에게

내가 잊히지 않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

 

19세기 당시 휘그당을 이끌었던 가문에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도 교류 없이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생전 공개하지 않았던 1,800편이 넘는 시가 침대와 옷장에서 발견되었다거나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들은 일화를 넘어 시인을 묘사하는데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아, 그를 더 궁금하고 신비롭고 특별하게 만들거나 한편으론 이상하고 사교성 없다는 핀잔의 구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 기록으로 추정하면 오래도록 신경쇠약으로 고생했고 1830년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비혼으로 아버지의 저택에서 살았다. 10대를 보낸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는 건강 탓에 학교를 쉬는 기간이 많았음에도 매우 총명하고 뛰어난 학생으로, 영어와 고전문학, 식물학, 기하학, 수학, 역사, 철학 등 학업에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수잔 헌팅턴 길버트를 비롯해 평생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수수께기 담은 시들을 보내거나 시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을 고백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상실과 아픔에 대해 격려와 위로를 담은 쪽지들을 보냈다.

은둔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지는 30대 중반 이후 평생 병석에 있던 어머니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느라 고되었을 것이지만 5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시쓰기에 충실했다. 한편 디킨슨의 호밀빵은 유기농 레시피로 유명하고 시인의 정원은 정원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허버리움이라 부르는 식물표본집도 식물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이들과 사별하며 겪은 상실과 변화들이 시인의 언어와 사상의 흔적이 되어 후대 독자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시대에 따라 문학이론, 비평 방식이 바뀌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에밀리 디킨슨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들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년 12월 10일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변호사이자 정치가, 대학 이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과 어머니 에밀리 노크로스(Emily Norcross)의 사이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애머스트에서 살았다.

 

또한 그녀는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약간 열린 문틈으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디킨슨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악화된 시력은 물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딸로서의 책임감,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의 차이, 식구들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 몇 번 있었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특히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죽자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그녀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어 그녀조차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는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를 마치게 된다.

 

디킨슨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 희망하는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의 신학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서보다는 문학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녀의 삶과 자아 탐색 정신이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실제로 만나 접촉을 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첨단의 정신을 가진 지식인들과 시를 교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이던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출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종교의 반항아로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었으며, 구원의 희망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친한 친구를 비롯한 많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찍부터 기독교의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강한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사고방식과 기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전통적인 시 형식에 대한 반발로 나아가도록 했고, 이러한 사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의 시에 혁신적인 요소를 불러오며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찍이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

 

그녀 생전에는 그녀의 요구에 의해 그녀의 시가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그녀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여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녀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왔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인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Mrs. Todd)의 주선으로 1775편의 시가 세 권의 시집으로 1890년, 1891년, 1896년에 연속 출간되고, 두 권의 서간집이 1894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55년 토머스 존슨(Thomas H. Johnson)에 의해 그녀의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그녀는 오늘날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옮긴이: 박혜란

출판사: 파시클

페이지: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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