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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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오해수
출판: 풍월당
페이지: 6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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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바그너

 

 

끝없는 욕망과 엄청난 재능이 결합하면 어떤 인간이 태어나는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문제적 인간, 작곡가 바그너의 모든 것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작곡가, 영화음악의 아버지 리하르트 바그너

 

  흔히 고전음악 작곡가라고 하면 흘러간 시대의 음악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몇몇 천재들의 성과는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가 그렇다. 그가 기존의 오페라를 완전히 혁신시켜 새롭게 내놓은 장르인‘악극(뮤직드라마)’은 시각적인 스펙터클과 강렬한 음악을 동시에 선보임으로써 관객들의 넋을 빼 놓았다. 이는 요즘에 가장 인기 있는 예술 장르인 영화, 특히 스펙터클한 힘을 가진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바그너가 확립한 유도동기(특정 인물이나 환경에 테마 선율을 부여함으로써 그 선율이 연주되면 대상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영화음악의 기틀이 되었고, 그가 열어젖힌 불협화음의 세계는 20세기 예술 영화들을 거쳐 이제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작곡 당시에는 충격적이고 전위적인 음악으로 받아들여졌던 바그너의 음악언어는 긴 시간이 흘러 대중들에게도 친숙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렇듯 바그너는 이전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자적인 방식으로 음악의 영토를 넓혔다. 예를 들어 스토리 자체는 길다고 할 수 없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공연 시간은 네 시간 가까이 되는데, 그 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음악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불협화음을 끝없이 이어가는 모습은 실로 경이적이다. 게다가 그 불협화음 자체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라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바그너는 누구보다도 명성과 인기를 원했지만, 당대 관객들이 원하는 작품을 쓰지는 않았다. 그는 관객의 취향을 바꿔버릴 음악을 쓰기를 원했다.

 

욕망과 모순으로 가득한 처세의 달인

 

  사람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내가 그들을 바꾸어버리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하지만 바그너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삶을 살아온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좀처럼 제어하거나 숨기려 들지 않았다. 아무 대책 없이 빚을 져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독촉에 시달리게 되면 야반도주를 했으며, 자신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대규모 전용 극장을 세우리라는 꿈을 갖고 있었고(놀랍게도 이 꿈은 이루어졌다), 기혼자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들과 사귀었으며,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을 지원해주지 않은 이에게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야만 했다. 아부와 아첨, 읍소, 협박, 지키지 못할 약속… 바그너에게는 그 모든 수단은 말 그대로 수단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모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드레스덴 시민 봉기의 주요 인물로 좌파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었지만, 돈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느 권력자에게도 고개를 조아릴 수 있었다. 또 그는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글을 쓰면서 당대의 유대인 혐오 풍조에 힘을 보탰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유대인들과는 끝까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점에서 ‘처세의 달인’ 바그너는 주로 자기 안으로 가라앉아서 작품을 탄생시킨 낭만주의의 여느 거장들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체면이나 윤리, 관습이나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좇았던 그였기에 당대 음악의 틀을 부수고 그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그너는 그야말로 복잡한 내면을 지닌, 그리고 그 다양한 면모를 모두 스스럼없이 표출하는 인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바그너의 이련 면모를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그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바그너에 대한 애증으로 얼룩진 인물,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는 말년에 누이동생이 책을 읽어주다가 바그너라는 단어를 말하자 독서를 멈추게 하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렇지?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게 맞지?”

 

악명과 루머를 넘어서

 

  오직 애호가로서 바그너의 음악과 삶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 오해수는 바그너의 복잡한 면모를 알려주면서 거기에 드리워진 편견과 환상을 벗기고자 한다. 특히 바그너를 추종한 히틀러가 대량 학살을 자행했고 그의 음악을 정치에 이용했으며, 실제로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글을 쓰기도 했던 바그너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도록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자는 바그너의 반유대주의가 진심이었다기보다는 자신의 기회주의를 포장하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를 비판하는 시점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바그너의 과오를 모두 옹호할 수는 없으며, 저자 역시 바그너의 특정한 면모에 대해서는 ‘뻔뻔하다’거나 ‘용서하기 어렵다’는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한 과오와 그것을 부풀린 루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이 종종 바그너의 편에 섰다고 말하지만, 명성보다 더 부풀려지기 쉬운 악명을 바로잡으려는 저자의 노력은 의미 있는 결과물로 태어났다.

  이처럼 『인간 바그너』는 엄청난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사료를 찾아볼 수 없었던 바그너에 대한 최초의 총론이다. 그의 복잡한 인간성과 끝없는 욕망 그리고 천재적인 음악성을 모두 조망하는 이 책을 통해 서양음악사상 가장 거대한 인물 중 한 명을 비로소 조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차례

 

머리말

제1장 바그너 생애의 동기

제2장 종합예술가의 등장

제3장 종합예술가의 산실

제4장 종합예술가의 길잡이

제5장 바그너 음악의 정체

제6장 바그너의 천재성과 인성

제7장 바그너와 유대인 문제

제8장 바그너와 여성

제9장 리가로부터의 탈출

제10장 바그너와 혁명

제11장 망명으로 시작한 제2의 창작 여정

제12장 재난, 그리고 구원

제13장 바그너의 수호천사와 젊은 호적수

제14장 바이로이트로 가는 길

제15장 비판과 찬사

제16장 베네치아에서 맞은 임종

맺음말

바그너의 가계도

바그너의 음악작품 목록

바그너의 저작물 목록

연보

참고문헌

인명 찾아보기

 

 

발췌

 

바그너의 표현에 따르면 여성은 인생의 음악이었고, 따라서 작곡가인 그에게는 삶의 동반자 이상이었다. 그는 여러 여성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들 중 바그너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 이는 첫 아내 민나와 그의 뮤즈 마틸데 베젠동크와 두 번째 아내 코지마였다. 그는 침상이 아닌 책상에서 〈인간성에 있어서 여성다움에 관하여〉를 쓰던 중에 임종을 맞았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는 여성에게 감사 표시를 한 셈이다. 그가 쓰다 만 글은 한 문단으로 이루어진 에세이로, 마무리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여성 해방의 과정은 황홀한 몸부림하에서만 진행된다. 사랑은—비극이다Gleich wohl geht der Prozes der Emanzipation des Weibes nur unter ekstatischen zuckungen vor sich. Liebe-Tragik.” 과연 화려하고 다채로운 애정 드라마의 피날레답다.

-230쪽

 

니체의 바그너에 대한 저항은 그에 대한 애증의 다른 표현이며, 여기에 코지마에 대한 동경이 어우러진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 니체의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감성은 바그너와의 갈등 중에 광기로 나타났으며, 그의 광기는 바그너에 대한 공격을 담은 저서를 집필하는 중에 한층 깊어졌다. 니체의 문장이 갈수록 공격적이고 강건체로 굳어진 것 역시 그 영향이다. 다만 그의 바그너에 대한 반발심이 정신질환을 불러온 것인지, 정신질환 증세가 바그너에 대한 반발심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니체의 바그너에 대한 절교가 그에 대한 사랑의 위장된 표현인 것만은 확실하다.

결국 니체가 바그너를 거부한 뒤에도 바그너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디오니소스로 남았으며, 바그너의 아내였던 코지마는 니체의 영원한 아리아드네였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심각해진 그는 자신을 디오니소스라고 여겼고, 따라서 아리아드네는 곧 자신의 아내였다. 그는 예나 대학교 부속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누가 여기로 데리고 왔느냐고 묻는 원장 오토 빈스방거Otto Ludwig Binswanger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 아내 코지마가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또한 그가 1897년부터 마지막 안식처로 삼은 바이마르의 빌라 질버블리크에서 어느 날 엘리자베트가 책을 읽어 주었을 때, 그는 바그너란 이름을 듣자 누이동생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지?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게 맞지?”

-399쪽

 

그는 이 곡(『파르지팔』)을 작곡하면서 가슴에 와닿는 온갖 감정을 음으로 바꿀 심산이었다. 하지만 정작 악기로는 표현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으며, 음표로 적은 악곡이 머리에 떠오른 악상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는 바그너의 아이디어가 상상할 수 있는 음악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점을 말해 준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화음을 사용하되 악기를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관현악이 빚어내는 음색이 신비롭게 들리도록 했다. 한 예로 그는 현악기의 벨벳 효과 위에 관악기의 화음을 더함으로써 마치 은은한 빛을 받으며 공중을 부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악의 상징인 클링조르 왕국에 대한 묘사는 반음계를 사용하고 파르지팔과 성배에 대한 묘사는 온음계를 사용하여 화성의 대비에 의한 음의 드라마를 엮어 냈다. 『파르지팔』은 관현악의 승리이고, 일흔을 바라보는 작곡가가 자신에게 바친 승리의 월계관이다. 니체는 바그너가 『파르지팔』에서 “십자가에 무릎을 꿇었다”고 평했으나, 음악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드뷔시는 여기에 쓰인 관현악 기법을 가리켜 “안에서부터 빛이 나온다”고 평했으며, 이 작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졌던 스트라빈스키도 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을 자제했다.

-432~433쪽

 

 

 

저자 소개

 

저자: 오해수

 

법무부 등지에서 공직생활을 하였으며, 퇴직 후 고전음악에 관한 글을 써왔다. 저서에 『신의 소리를 훔친 거장 1, 2』 · 『혼을 깨우는 음악』 · 『노래극의 연금술사』가 있고, 바그너의 오페라 대본집 『니벨룽의 반지(안인희 옮김)』 총 해설을 썼다. 바그너의 음악이 후대 예술에 끼친 영향력과 그 후손들의 활동상, 바이로이트 극장사, 바그너와 제3제국과의 관계를 다룬 “바그너의 유산(가제)”을 비롯해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이: 오해수

출판: 풍월당

페이지: 600쪽

사이즈: 152*21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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