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Witchcraft has not a Pedigree

11,000원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옮긴이: 박혜란
출판: 파시클 
페이지: 158쪽
판형: 125×20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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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Witchcraft has not a Pedigree   

 

 

다른 시간을 함께하는 고고한 페미니스트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 그것은 우리가 숨쉴 때부터 존재했고 / 

그것이 나갈 때 문상객들이 그것과 마주치는 / 우리 죽음의 순간 

 

에밀리 디킨슨의 번역시집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가 나왔다. <파시클>출판사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기획에 따라 선정하고 번역한 작품 55편을 7장으로 모아 편집하고 2019년 11월 15일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를 출판했다.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경탄하고 삶과 고독과 죽음, 상실과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특히 이 시집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훌쩍 넘어 존재한 시인의 페미니스트 면모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제목이 없어서 차례에는 각시의 첫 행을 두었다. 본문에는 번역과 함께 원문이 된 영문 시를 함께 실었는데 원문 텍스트는 에밀리 디킨슨 아카이브에 올라와 있는 시인의 필사 원고를 바탕으로, 번역문학가이자 <파시클> 대표 박혜란이 직접 기획하고 선택하여 편집, 번역했다. 가급적 시인의 단어 선택, 시행 구분, 연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여 원문 텍스트를 구성, 그를 바탕으로 번역했고 디킨슨의 필사 원고를 텍스트로 번역하였기에, 20세기에 출간된 디킨슨전집들에 기반한 기존 번역들과는 시의 구성과 내용이 다소 달라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선하면서도 고전적인 디킨슨의 시 세계를 소개한다. 

 

여성 자아가 강하게 드러난 시들 

 

순백 선거의 권리로 얻은 — 내 것! 

왕실 인장印章을 받은 — 내 것! 

진홍 감옥 — 옥중 암호로 얻은 — 내 것! 

창살로 — 가릴 수 없다! 

....................................................... 

 

오, 만일 내가 — 남자였다면 — “흰옷”을 입었다면 — 그리고 그들이 — 노크했던 — 저 작은 손이라면 —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에는 다른 에밀리 디킨슨의 시선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제의 시들이 실렸지만 다른 시집보다 여성자아가 강하게 드러난 시들이 유독 많다.

특히 「캘버리 여제! Empress of Calvary!」 장에서는 여성 존재 자체의 존엄과 자부심과 삶 속에 경험되는 억압과 배제의 부조리를 들춘다. 시의 자아는 처음에는 가부장 아래 선택권 없는 약한 존재였다가 모순과 불평등과 억압을 인식하고 새로 태어날 것을 다짐하기도 하고 이제는 스스로 우뚝 섰음을 홀연히 또는 비장하게 선언하기도 한다. 기독교 문화와 언어가 일상이던 시절을 살던 시인으로서는 당연하게도 기독교적 색채가 진한 시들 역시 많은데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시를 따라가며 시대착오적이거나 진부하다고 여기는 순간 여지없이 수수께기와 같은 반전이 나타난다. 성경과 기독교 교리의 어휘들을 시어로 삼은 화자는 어쩌면 교회와 가정에 순종하는 신실한 백인 중산층 여성같기만도 한데, 꼼꼼히 읽다 보면 어느새 신성모독으로 가득한 것도 같으니 어리둥절한 동시에 통쾌한 해갈이 아닌가. 화자는 자연을 즐기고 신과 죽음에 질문을 던지고 고독한 존재로서, 상실의 아픔에 잠겨있으면서 동시에 천장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양말을 기우고 빵 반죽에 쓸 밀가루를 체에 밭치는 생활인이기도 하다. 

 

반쯤 의식 없던 여왕 — 하지만 이번에는 — 적임이라 — 기립했으니, 

의지에 따라 선택도 거부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선택한 건, 그저 왕관 하나 

 

 

역사와 전통 속 자신만의 언어로 벼린 시 

 

나의 의지는 그것의 단어를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지만, 유산과도 같은 성찰적 내 것의 황홀을 — 즐거워한다 — 

 

「이렇게 명랑한 꽃 한 송이 Sogaya Flower」와 「그녀가 놀다 죽었다 She died at play」 는 19세기 미국 동부 작은 도시 백인 중산층 여성의 일상 속에서 사랑을 얘기하고 미학적경험을 노래하며 여러 흥미로운 질문과 상상을 펼친다. 

 

「다른 티끌 다른 신화 Other Motes Other Myths」와 「낯선 비춤 Strange Illumination」 에서부터는 이전 시들의 사색이 언어적 고민으로 좀 더 심화되면서, 시는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자신 만의 언어로 자리잡기를 모색한다. 

「인카네이션 Incarnation」은 언어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하여 시를 비추는데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인간의 몸으로 현실세계를 살았던 신이라는 예수의 존재에 유비한다. 

「죽음이 아니었다, 내가 일어났고 It was not Death, for I stood up」의 시들은 당시 기독교 교리와 종교적 신념과는 조금 다른 수준에서, 어쩌면 지금으로서도 낯선, 현실과 죽음 과 불멸을 상상한다. 

 

 

숙제로 남은 시의 수수께끼 

 

나는 아름다움으로 북적이다 죽으리라 

아름다움이 내게 자비를 베풀기를 

내가 오늘 숨을 거둔다 해도 당신 앞이라면 — 

 

생명력과 생각과 감정은 풍부히 흐르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그렇듯 번역 역시 과하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고 정갈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다. 얼핏 보면 설명이 부족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길 수도 있을 만큼 다소 건조한 느낌, 명쾌히 이거다 단정짓지 않는 어휘들은 시의 의미와 감정을 가급적 원문 그대로 옮기려 노력한 번역자의 의도가 실렸다. 21세기 한국 독자에게는 현대 시가 아닌데 다 낯설고 어려울 수도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번역하는 이유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얻은 시학적 깨달음을 시읽기의 독법으로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에밀리 디킨슨은 보편적으로 보이는 인생의 이야기로 시작해서는 번번이 예상과 전혀 상관없이 해독의 숙제를 남기고 끝맺는데 시읽기는 독서 게임이며 이 게임을 해나가는 자체가 인지 예술이라 보는 번역자는 이 게임을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파시클과 번역 

 

우리는 제정신으로 내려오니 마법에 홀린 땅에서 그동안 조금 더 새로워졌다 

<파시클>은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내러티브 이론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 에서 석사, 박사 과정 중 에밀리 디킨슨 시를 읽으며 점차 매료되어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 을 바꿔 연구해온 번역문학가 박혜란이 번역해 모아둔 에밀리 디킨슨 시를 한 권 한 권 시 집으로 만들고 있다. 

 

<파시클>은 앞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로 첫 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비롯해 그림시집 『멜로디의 섬광』 『어떤 비스듬 빛 하나』 『바람의 술꾼』 『장전된 총』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함께 출판한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와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를 더해 시선집 시리즈 세 권이 되었다. 

 

<파시클>은 또 에밀리 디킨슨이 자신의 시를 40여 편씩 묶어 필사하고 손수 제본한 각각의 시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을 보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 새로운 접근들

그렇게 비상하여 멀어지며 결코 한숨짓지 않으니 그것이 슬픔의 방법이다 19세기 당시 휘그당을 이끌었던 가문에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도 교류 없이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생전 공개하지 않았던 1,800편이 넘는 시가 침대와 옷장에서 발견되었다,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들은 일화를 넘어 시인을 묘사하는데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아, 그를 더 궁금하고 신비롭고 특별하게 만들거나 한편으론 이상하고 사교성 없다는 핀잔의 구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 기록으로 추정하면 오래도록 신경쇠약으로 고생했고 1830년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 날 때까지 평생 비혼으로 아버지의 저택에서 살았다. 10대를 보낸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는 건강 탓에 학교를 쉬는 기간이 많았음에도 매우 총명하고 뛰어난 학생으로, 영어와 고전문학, 식물학, 기하학, 수학, 역사, 철학 등 학업에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수잔 헌팅턴 길버트를 비롯해 평생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수수께기 담은 시들을 보내거나 시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을 고백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상실과 아픔에 대해 격려와 위로를 담은 쪽지들을 보냈다. 

은둔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지는 30대 중반 이후 평생 병석에 있던 어머니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느라 고되었을 것이지만 5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시쓰기에 충실했다. 한편 디킨슨의 호밀빵은 유기농 레시피로 유명하고 시인의 정원은 정원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식물표본집도 식물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이들과 사별하며 겪은 상실과 변화들이 시인의 언어와 사상의 흔적이 되어 후대 독자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시대에 따라 문학이론, 비평 방식이 바뀌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에밀리 디킨슨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들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그녀가 놀다 죽었다 

 

그녀가 놀다 죽었다 — 시간을 대여해 얼룩 묻혀가며 갖고 놀다 다 써버리고는 

말썽꾸러기 까불대듯 고꾸라져 꽃단장한 침상 위에 누웠다 

....................................................... 

 

그녀와 죽음은 서로 아는 사이지만 정적 속에 만나는 친구여서 인사하고 지나치며 단서 하나 남기지 않는다 

 

시의 어느 구석 한 군데도 시와, 시를 통해 본 삶과 죽음과 존재에 관한 애정과 경외심을 찾지 못할 곳이 없다. 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권하는지 묻는다면 이런 대답은 어떨까 한다.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인해 온몸이 오싹해졌는데 그런 나를 어떤 불로도 따뜻이 못한다면, 그게 시예요. 

마치 정수리부터 한 꺼풀 벗기듯 몸으로 느끼신다면, 그게 시예요. 오직 이런 식으로만 나는 시를 알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_에밀리 디킨슨,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중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옮긴이: 박혜란 

출판: 파시클 페이지: 158쪽 

판형: 125×20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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