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Myself the only Kangaroo among the Beauty

11,000원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옮긴이: 박혜란
출판: 파시클 

페이지: 160쪽
판형: 125×20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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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Myself the only Kangaroo among the Beauty 

 

 

자연의 구석구석을 놀잇감으로 자신과 삶을 통찰한 시인 

 

다시 거래를 시도하는 거미 한 마리 — 

더불어 어슬렁거리는 장닭 한 마리 — 

사방에서 기대했던 꽃 한 송이 — 

 

에밀리 디킨슨의 번역시집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가 나왔다.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는 <파시클>출판사에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기획에 따라 고르고 번역하여 2019년 11월 12일 출판한 시집으로 7장으로 묶어 배열한 총 56편의 시가 실려 있다. 본문에는 번역과 함께 원문이 된 영문 시를 함께 실었는데 원문 텍스트는 에밀리 디킨슨 아카이브에 올라와 있는 시인의 필사 원고를 바탕으로, 번역문학가이자 파시클 대표 박혜란이 직접 기획하고 선택하여 편집, 번역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제목이 없어서 차례에는 각시의 첫 행을 두었다. 가급적 시인의 단어 선택, 시행 구분, 연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여 원문 텍스트를 구성, 그를 바탕으로 번역했고 디킨슨의 필사 원고를 텍스트로 번역하였기에, 20세기에 출간된 디킨슨 전집들에 기반한 기존 번역들과는 시의 구성과 내용이 다소 달라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선하면서도 고전적인 디킨슨의 시 세계를 소개한다. 작품 하나하나 에밀리 디킨슨의 원문을 가능한 한 생생히 살리려는 번역자의 애정 어린 시선과 손길이 담겨, 정원 한 구석에서 아주 작은 연지벌레와 거미를 찾아보는 시인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바삭바삭, 윤기를 내재한 언어들

예감이란 — 잔디밭 위 — 저 긴 그림자 — / 곧 해가 지겠구나 — 

깜짝 놀란 풀들에게 알리는 공지 / 어둠이 — 곧 통과합니다 — 

 

시집에는 특히 자연을 상대로, 또는 가리키며 대화하듯 독백하듯 써내려간 시들이 주로 담겼다.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기보단 시인에게 익숙한 주변과 일상, 집 앞 정원과 산책로에서 흔히 발견하는 작은 새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비, 벌레, 그리고 장미, 석양, 일출과 같은 가 까운 존재들이 디킨슨의 자연이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다 보면 시인이 말을 걸고 상상하며 감탄하고 기꺼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절로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함께 정원을 거닐고 나무 위에서 벌레를 찾기 위해 공들이는 새 한 마리를 쳐다보고 있는 자신도 발견할 것이다. 온통 둘러싼 갖가지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다 “그런데 나는 캥거루”라며 슬픈 듯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상상하며 시작하여 아마 캥거루는 이런 뜻이 아닐까 독자는 각자의 결론에 도달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인이 마냥 자연의 아름다운 외모를 묘사하고 그 아름다움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단순히 고백하는 감상적인 시들이라고 오해해선 안 된다. 독자들이 감상에 젖으려는 순간, 시는 담담하고 대담하며 건조한 듯 윤기가 가득하다. 냉철한데 머뭇거리고 수줍기도 하지만 과감하다. 

매끄럽지만 덧칠은 없다.

파시클의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에서 만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충분히 그 맛이 살아있다.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석양이 나를 보고 있으면 그래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라는 제목은 에밀리 디킨슨이 당시 영향력 있던 평론가 히킨슨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 중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일은 맴돌기랍니다 — 관습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트는 모습에 사로잡혔거나 — 석양이 나를 보고 있으면 그래요 —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선생님, 그래서 아주 괴로워요, 

가르침을 받으면 그것은 사라지리라 생각했어요....” 

_ 제사 

 

번역 후기의 언급처럼 “시인이 맴돌기를 일과로 삼는 이유를 떠올린다면 캥거루는 다름 아닌 예쁜 것들에 매료된 시인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즐겁게 겅중대는 캥거루의 마음 과 또 그런 캥거루를 보고 있는 우리의 감상은 어떤 모습일까? 

독자는 각각 자신의 시선으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선을 따라가 볼 수도, 그러다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도 있겠다. 

 

숙제로 남은 시의 수수께끼 

 

어떤 행복한 꽃에게나 분명 / 놀랄 일은 아니겠지만 

서리는 놀고 있던 꽃을 참수한다 — 

 

생명력과 생각과 감정은 풍부히 흐르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그렇듯 번역 역시 과하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고 정갈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다. 설명이 부족하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길 수도 있을 만큼 약간 건조한 느낌과 명쾌히 이거다 단정 짓지 않는 어휘를 그대로 옮기려 노력한 번역자의 의도가 실렸다. 21세기 한국 독자에게는 현대 시가 아닌데다 낯설고 어려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번역 하는 이유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얻은 시학적 깨달음을 시읽기의 독법으로 나누고 싶었다 고 밝혔다. 

에밀리 디킨슨은 보편적으로 보이는 인생의 이야기로 시작해서는 번번이 예상과 전혀 상관없이 해독의 숙제를 남기고 끝맺는데 시읽기는 독서 게임이며 이 게임을 해나가는 자체가 인지 예술이라 보는 번역자는 이 게임을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파시클과 번역 

 

행복은 어떤 모습일지 곰곰이 생각해봤어 / 그것을 내 손 안에 쥘 수 있을 때 

그 느낌의 크기는 — 안개를 뚫고—보이는— / 저 높이 떠있는 그만큼일까— 

 

<파시클>은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내러티브 이론을 전공하다가 내러티브와 전혀 다른 글쓰기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매료되어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꿔 연구해온 번역문학가 박혜란이 에밀리 디킨슨 시를 번역해 모아 한 권 한 권 시집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출판사다. 

<파시클>은 앞서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시리즈로 첫 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비롯해 그림시집 『멜로디의 섬광』 『어떤 비스듬 빛 하나』 『바람의 술꾼』 『장전된 총』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함께 출판한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와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를 더해 시선집 시리즈 세 권이 되었다. 

<파시클>은 또 에밀리 디킨슨이 필사한 자신의 시를 모아 손수 제본한 각각의 책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에밀리 디킨슨을 보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 새로운 접근들 

 

오 미래여! 그대는 비밀스런 평화 

아니면 땅속 깊숙한 비통함 — 

 

19세기 당시 휘그당을 이끌었던 가문에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도 교류 없이 살았던 에밀리 디킨슨. 생전 공개하지 않았던 1,800편이 넘는 시가 침대와 옷장에서 발견되었다, 평생 흰옷만 입고 살았다는 이야기들은 일화를 넘어 시인을 묘사하는데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아, 그를 더 궁금하고 신비롭고 특별하게 만들거나 한편으론 이상하고 사교성 없다는 핀잔의 구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 기록으로 추정하면 오래도록 신경쇠약으로 고생했고 1830년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비혼으로 아버지의 저택에서 살았다. 10대를 보낸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는 건강 탓에 학교를 쉬는 기간이 많았음에도 매우 총명하고 뛰어난 학생으로, 영어와 고전문학, 식물학, 기하학, 수학, 역사, 철학 등 학업에 열심이었다. 학교에서 수잔 헌팅턴 길버트를 비롯해 평생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수수께기 담은 시들을 보내거나 시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을 고백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상실과 아픔에 대해 격려와 위로를 담은 쪽지들을 보냈다. 은둔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지는 30대 중반 이후 평생 병석에 있던 어머니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느라 고되었을 것이지만 5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시쓰기에 충실했다. 한편 디킨슨의 호밀빵은 유기농 레시피로 유명하고 시인의 정원은 정원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식물표본집도 식물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이들과 사별하며 겪은 상실과 변화들이 시인의 언어와 사상의 흔적이 되어 후대 독자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시대에 따라 문학이론, 비평 방식이 바뀌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에밀리 디킨슨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들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벽 하나 있는 삶이 더 낫다고 

 

마음이 있으면 가끔 / 영혼이 실리면 드물게 일단 힘이 있으면 더 희귀해지고 / 사랑은 아무튼 — 별로 없다. 

 

....................................................

불 켜지지 않은 터널 / 벽 하나 있는 삶이 

더 낫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 전혀 존재하지 않느니 —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목의 대상이 되게 하였지만 시인을 더 특별한 존재로도 만들지 않았을까. 

고독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말하며 부조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태도를 다짐하는 페미니스트 크고 작은 자연의 구석 구석을 사랑을 담아 들여다보며 삶과 자신을 읽고 발견해가는 인류학자가 아닐까.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시인이 자칭한 캥거루란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면서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지은이: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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