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큐레이션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
공간 브랜드 디자인
그리고 스타일을 만든 사람들
이 책은 여행책이 아니다. 『도쿄 큐레이션』은 도쿄라는 브랜드 자체를 경험하는 여정이다.
오랜 시간 잡지사 패션 에디터로 일하다가 현대카드 마케팅 관련 부서로 이직한 저자는 어느 날, 도쿄에 살게 되었다. 별안간 도쿄라는 여행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들어가 봐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는 첫 문장은 저자가 이야기를 시작하며 전하는 메시지이자, 우리가 도시를 관찰하게 될 시점이 된다.
누구보다 브랜드의 탄생과 죽음을 가까이 목격한 에디터로서, 6년 동안의 도쿄 생활자로서 도쿄 로컬의 삶이 지닌 빛과 그림자를 균형감 있는 시선으로 담았다. 에디터의 프리즘으로 바라본 일본의 순간은 결국 우리가 머무는 곳에서도 유효한 영감이 될 것이다. ‘도쿄 큐레이션’은 수많은 정보의 파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취향을 유연하게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책 소개
도쿄라는 브랜드를 경험하는 여정
그리고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대화
수많은 브랜드가 수없이 뜨고 지고,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소비되는 요즘, 이 책은 도쿄라는 브랜드를 경험하며 지금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크리에이티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근본적 의미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단지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표면적 멋이 아닌, 정신적 근간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 라이프스타일의 출발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도쿄라는 도시에서 출발해야 할까? 이 시대에 누가 무엇을 먼저 시작했는지 오리지널리티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것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키우며 브랜딩하는 것이다. 일본이 정말 잘하는 것이 이 브랜딩이다. 무서운 힘이다. 그러니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도쿄는 더욱 자주, 오래 머물러야 할 생명체와도 같은 도시다.
그저 일본에 관심이 많은 사람, 혹은 눈앞의 현실을 내려놓고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던 사람에게도 도쿄는 매력적이다. 남다른 공기와 감동적 분위기, 뭔가 좋았다는 느낌들은 다시 그 도시를 향하게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도쿄의 공기’를 읽는 책이다.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에디터가 거주한 도쿄 생활 속에서 만난 공간과 브랜드 디자인 이야기, 그리고 일본을 움직이는 크리에이터에 관한 생생한 인터뷰를 실었다. <1장. 형태>, <2장. 빛>의 공간과 콘텐츠가 도쿄 생활자의 <3장. 풍경>을 이루는 일상 이야기, <4장. 맛>, 그리고 <5장. 사람>에 이르는 각각의 다섯 장 이야기는 주제별 여행을 디테일하게 돕는 도쿄 견문록이며, 저자가 새로운 사람들과 좌충우돌 부딪히며 조금씩 확장해온 소통의 기록이기도 하다.
최근 도쿄에도 유난히 새로운 호텔과 복합문화 시설, 카페, 숍의 수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어 옥석을 가려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다시 시작될 우리의 여행을 위해 이 책의 안목을 전한다.
잠시 도쿄행을 미루더라도 이 책을 만나야 할 이유는, 섬세하고도 유쾌한 문장 사이사이 자신의 일과 생활을 만나는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 생활자인 저자가 마음을 다해 선보인 6년의 기록을 따라 우리의 미감을 쌓아가는 경험은, 우리 도시를 바라보는 영감으로도 확장된다. 취향이란 ‘나를 둘러싼 환경의 부산물로’로 어느샌가 각자의 빛깔로 빛나는 것이라는 저자의 문장처럼.
『도쿄 큐레이션』은 지금 당장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서도, 우리가 지금 머무는 공간에서 색다른 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이 책의 여정
1 형태 : 도시 콘텐츠와 자연이 이루는 문화
도시 콘텐츠를 구성하는 갤러리와 미술관, 공원, 호텔, 공공시설 등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담았다. 저자가 눈과 마음으로 만난 공간은 일상의 기분 좋은 자극을 전하며 우리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으로도 재발견된다.
무엇이든 가져와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일본인 특유의 와(和)사상을 목격한 미술관, 도쿄에서 만난 ‘조선백자’ 전과 오쿠라 집고관에서 만난 석탑 이야기는 우리의 것부터 되돌아볼 기회의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2 빛 : 취향으로 빛나는 물건과 숍
우리가 도쿄를 잊지 못하는 것은 작은 가게에서도 상품 자체를 초월한 어떤 인상적인 분위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 이상으로 직원과 소통하며 누군가의 컬렉션이 놓여진 그 공간의 느낌과 공기를 함께 공유하는 것. 그렇게 숍을 체감하는 과정의 순간을 저자는 ‘마음의 환기’라 했다.
‘아름다운 물건만 모아놓았다고 편집숍이 아니다. 아트 디렉터의 철학과 그것을 풀어내는 형식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그것이 공간의 유니크하고도 절대적인 취향과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되는 까닭이다.’ ‘물건은 인간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문장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물건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물건이 전하는 철학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자신의 빛깔로 빛나는 숍에서 물건들의 감각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철학과 안목을 만나보길 바란다.
3 풍경 : 도쿄 생활자로서의 일상
저자가 도쿄 생활에 머물며 <풍경>을 이루는 이야기다. 일상적 리듬 속에서 오모테나시 정신, 인간을 배려하는 의식인 다도의 정신,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을 발견하는 킨츠기, 그리고 표현하지 못한 채 공기처럼 존재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는 법, 우리가 일본을 말할 때 이해할 듯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 키워드에 대해 경험자로서 들려준다.
저자가 일본 사회의 한 단면에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시작한 이케바나 이야기에는 도쿄의 리듬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의 시간이 느껴진다. 이케바나 꽃 재료들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다짐의 시간으로 나아가듯, 일본의 시간엔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4 맛 : 로컬들만 가는 진짜 맛집
저자가 진심으로 아끼는 진짜 로컬 맛집을 공개한다. 맛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DNA에 심어진 어떤 굳은 심지, 한 나라의 음식을 다루더라도 지역별, 스타일별로 각기 다르게 파고 들어가는 일본만의 주무기, 음식을 향한 셰프의 진심이 담긴 오모테나시를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다.
5 사람 : 지금, 도쿄를 만들고 있는 크리에이터들
도쿄의 마지막 여정은 문화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에 이른다. 결국 모든 것의 끝에는 사람이 있고, 도쿄 여행도 그 도시의 풍경을 만든 사람들로 기억될 것이다.
도쿄라는 브랜드를 만든 크리에이터들을 저자가 직접 만나 나눈 대화를 공개한다. 일본에 대한 지식과 매뉴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있어 담을 수 있는 철학이다.
그리고 5장 후.
도쿄 너머 예술품 같은 자연이 펼쳐지는 <BEYOND Tokyo>,
실제 저자가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쓴 <당신에게 보내는 도쿄의 눈부신 계절> 동선도 놓치지 말기를. 우리의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저자
글·사진
이민경
잡지 「스타일 H」 「인스타일」 패션 에디터, 현대카드에서 콘텐츠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2016년 여름부터 2022년 봄까지, 도쿄에서 생활감이 묻어나는 현지 소식을 에디터의 감각으로 전했다. 이 책은 그 6년의 도쿄 공기를 담은 기록이다. 도쿄 로컬의 삶이 지닌 빛과 그림자를 균형감 있는 시선으로 담았다.
그동안 「매거진 B」 「W 코리아」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도쿄의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에 관한 글을 썼으며 옮긴 책으로는 『미스터 포터-스타일과 품격 있는 삶을 위한 매뉴얼(총
3권, 그책)』이 있다.
추천사
지구상 수많은 도시 중에서 도쿄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 곳이 있었던가.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책장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싶다. 도쿄 거리를 걷고 싶다. 그곳에 가고 싶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본질은 꿰뚫지 못한 채, 누구나 다 아는 곳만 찾아 다녔던 나의 수박 겉핥기 식 도쿄행과 달리, 저자가 풀어낸 도쿄 이야기는 형언할 수 없이 알차고 섬세하다. 읽는 내내 취향 좋은 친구가 곁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도쿄 큐레이션』은 십여 년 차 에디터로서, 6년 차 도쿄 생활자로서 직접 경험한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신(scene)의 미적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 새로운 공간과 브랜드를 제안하는 일을 하는 나를 비롯한,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한 공간과 브랜드, 사람들을 만나러 지금 당장 도쿄행 티켓팅을 하고 싶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듯하다.
_김태경(어반북스 공동대표/편집장
이 책에는 도쿄에 살며 부지런히 다녀야만 보이는 장소들이 있다. 저자는 곳곳에서 열심히 질문을 건넨다.
질문을 받은 일본인들은 특유의 마지메(まじめ, 성실)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대답하고, 그 문답의 뭉치들이 모여 근사한 책 한 권을 이룬다. 도쿄에 들어가 살아본 사람만의 감성이 살아있다. 저자 이민경이 찾은 멋지고 귀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길 바란다.
_박찬용(칼럼니스트)
차례
하나. 형태 / 도시 공간과 문화
현대의 젠 (호류지 박물관)
조용히 흐르는 풍경 (파빌리온 도쿄 2021)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도서관 (국제 문학관)
또 하나의 우주 (슌카엔 분재 박물관)
내 영혼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아사쿠라 조각 박물관)
작품 없는 미술관 (세타가야 미술관)
역사를 잇는 방법 (오쿠라 호텔)
귀향하지 못한 석탑 (오쿠라 집고관)
과거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아트 (국립 근대미술관)
본질을 꿰뚫는 전시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
도쿄에서 만난 ‘조선백자’ 전 (일본민예관)
미래 디자인의 영감 (2121 디자인 사이트)
계절과 꿈의 거울, 꽃 (하이이로 오오카미 & 니시벳푸 상점)
다른 공기를 선사하는 곳 (그린 스프링스)
일본식의 ‘장 미셸 바스키아’ 전 (모리 미술관)
다른 결의 일본 건축가들
공공의 장소가 가지는 의미 (무사시노 플레이스)
둘. 빛 / 브랜드와 숍
문화를 창조하는 일 (지콘카)
골동품 같은 선인장 (쿠사무라 도쿄)
자신만의 빛깔로 빛나는 숍 (인 어 스테이션)
내가 납득하는 물건 (아트 앤 사이언스)
퇴색하지 않는 아름다움 (페지트)
도쿄 편집숍의 중추 (시보네)
낡은 것들의 새로운 가치 (디앤디파트먼트 도쿄)
긴장과 완화가 만든 라이프스타일 (하쿠지츠)
편집숍의 미래 (카시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 (오라리)
보다 잘 살기 위한 힌트 (푸드 포 소트)
내일의 그로서리 숍 (이트립 소일)
고아한 아틀리에 (미즈사이)
설레는 물건의 집합소 (히비야 센트럴 마켓)
취향에 대한 욕망 (아나토미카)
고요한 공간의 질서와 속도 (10 텐)
용(用)의 미 (프레시서비스 헤드쿼터스)
손과 상상으로 쓰여진 시(詩) (미나 페르호넨)
숲속의 동화나라 (미나 페르호넨 엘라바Ⅰ·Ⅱ)
내가 사랑하는 서점
Favorite Souvenirs
셋. 풍경 / 도쿄 일상
나에게 클래식이란
빈티지와 앤티크의 여전한 효용성
봄, 벚꽃
종이 지도, 마음의 초대장
자연을 닮은 의자
일상의 오모테나시
다도의 마음
이케바나
킨츠기를 하며 생각한 것들
일본의 리듬
불완전함의 미학
공기(空氣)를 읽는다는 것
일본인의 귀여움
요즘의 아쉬움들
(다소 불편한) 메시지를 예술로 만드는 힘
긴자의 두 얼굴
스스로 지키는 문화, 기모노
음악 축제의 낭만
단언하지 않는 것
이곳 아이들을 보며
따로 또 같이, 크루(crew) 문화
날씨가 준 깨달음
살아봐야 알게 되는 필수품
청소의 아름다움
넷. 맛 / 로컬들의 진짜 맛집
고집스러운 라멘 한 그릇 (비기야 라멘)
별이 되어 빛나는 음식 (에스키스)
술이 술술 당길 때 (내추럴 와인)
커피의 신세계 (커피 마메야 카케루)
나만의 고요 (가부키)
초도 이이 (패스)
추억의 소울 푸드 (돈까스)
일본 음식의 동맥 (소바)
여름을 열고 닫는 의식 (다신 소안)
우리가 사랑하는 쇼조 (쇼조 카페)
심플하고 동화적인 (사브어)
그리운 맛 (경양식)
오므라이스의 정석 (키친 펀치)
어른을 위한 스낵 바 (베르그)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시 (스시 토우)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맛 (468)
덴푸라와 할아버지 (미야카와)
변함없는 시간이 머무는 곳 (킷사텐)
나만 알고 싶은 재즈 킷사 (재즈 올림푸스!)
카이센동 한 그릇에 담긴 수고스러움 (츠지한)
다 아는 맛의 깊이 카레 정복기
황홀한 순간이 되어주는 곳 (노포)
다정한 샌드위치 (하마노야 팔러)
진심의 야키자카나 (우오타케)
충분한 한 끼 (토토야)
다섯. 사람 / 스타일을 만든 크리에이터들과의 대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이것으로도 충분한 것 (사루야마 오사무)
태도가 문화를 만든다 (마루야마 치히로)
유리가 그리는 조용한 빛 (다니구치 요시미)
이탈리안 오마카세 교향곡 (도모리 도시지)
오모테나시적인 성실함 (요시다 미즈요)
계산하지 않은 자유 (나카무라 게이스케)
일본인에게 재즈란 (구수노에 가츠마사)
풍경을 만드는 사람 (나카하라 신이치로)
디자이너의 꿈 (구로고우치 마이코)
BEYOND Tokyo / 도쿄에서 떠난 여행
‘클래식 호텔’이란 명칭 (후지야 호텔)
자연과 예술이 빚어내는 작품 (에노우라 측우소)
다자이 오사무의 방 (기운각)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 (잉크 갤러리)
내가 있을 집 (스타넷)
쇠락하는 시간이 주는 아름다움 (하마다 쇼지 기념)
마시코 산코칸 뮤지엄
우동을 먹다가 건축을 생각하다 (호우토우 후도)
평온한 소우주 (에밤 에바 야마나시)
가루이자와의 기억
돌과의 대화 (이사무 노구치 가든 뮤지엄)
가마쿠라의 뒷모습 (메이게츠인)
살아있는 건축 (미즈니와 워터 가든)
당신에게 보내는 도쿄의 눈부신 계절
이 책의 문장
하나. 형태
P.34
음악을 사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 속에는 그 어떤 글보다 생생한 리듬이 살아있다. 내가 그를 동경하는 건 그의 음악적 글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P.37
누군가의 집에 들어서듯 활짝 열린 대문을 통과하자마자 나를 반긴 건 정원 가득 빼곡히 들어선 분재였다. 겨우 몇십 년 된 나의 나이테를 가볍게 비웃듯 몇백 년은 족히 이 지구를 살아내고 견뎌낸 자태에는 뭐랄까, 어떤 말로도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신성한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그 장엄하고도 우아한 모습은 하나하나가 자신들만의 세계이자 우주 자체였다.
P.48
작품을 모두 걷어낸 채 하얗게 텅 빈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오롯이 마주한다는 건 매우 기묘한 경험이다. 화장을 지운 연극배우의 얼굴처럼,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평일의 도심처럼 생경했다. 그것을 허락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에게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P.55
다 때려부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레트로가 붐이라며 모든 옛것들이 그저 오래됐다는 이유로 추앙받는 것도 이상하다. 다만 전쟁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풍경 또한 어디에도 없는, 그 나름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무미건조하다고, 몰개성하다고 취급받는 1980년대 아파트들도 해석하기와 진화 방식에 따라 자랑스러운 우리만의 유산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P.86
노출 콘크리트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안도 다다오는 건물 그 자체가 주변 환경에서 독보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을 잘한다. 안도 다다오 이후 세대인 구마 겐고는 반대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건축을 추구한다. 환경에 녹아들어 마치 환경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건축이다.
둘. 빛
P.108
정중앙에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오로지 자신만의 조명을 받은 선인장들이 조용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처음 보는 생경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순간 멈칫했다. 긴자 한복판 쇼케이스에 놓인 주얼리를 마주한 듯 눈부시고,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어쩐지 주얼리보다 더 경이롭게 느껴졌던 건 선인장은 시작과 끝이 있는, 숨 쉬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P.113
그 속에서 자신만의 빛깔로 빛나는 숍이란 어떤 것일까, 인 어 스테이션을 보며 생각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온전하지만 온화하게 드러내는 것.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신념을 강건하되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 비단 숍 이야기만은 아니다. 정보가 난무해 오히려 SNS를 켜고 싶지 않을 때도 생겼다. 다 비슷비슷해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정보의 바다가 때론 무자비하게 느껴져서다.
P.118
그녀의 까다로운 납득 관문을 통과한 물건으로 가득 찬 아트 앤 사이언스는 ‘물건이 차고 넘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소비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의가 될 것이다. 그녀가 소개하는 제품들은 확실히 트렌드에 크게 휘둘리거나 유행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쓸수록 빈티지한 멋이 살아나며 오래도록 만족감이 높다. 나의 경우는 몇 년 전에 구입한 남색 스웨이드 가방이 그랬다. 충분히 납득이 간다.
P.129
언젠가 세상의 감각을 대표했던 버려진 아이템들이 그들의 눈을 통해 새롭게 리디자인돼 펼쳐지는 ‘구제’의 과정은 언제나 진한 감동을 준다.
P.151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지만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걸 도모한다면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움직임이 정체된 도시에 흥미로운 색을 입히고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면, 이보다 의미 있는 일상 속 예술이 또 있을까.
P.160
오늘날의 진정한 새로움은 규정 지어진 한계를 허들 넘듯 계속 뛰어넘는 데서 출발하는지 모른다. 모르는 지역의 시장을 우연히 방문할 때의 설렘은 여행이 주는, 계획되지 않은 기쁨이다.
P.171
프레시서비스가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속성’이라는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언제든 추후에 재구매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그것은 좋은 것은 계속 쓰고 싶다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배려이자, ‘용의 미(用の美)’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고 실천하는 태도라 나는 생각한다.
셋. 풍경
P.199
도쿄의 앤티크 마켓은 일본인의 얼굴을 참 많이 닮았다. 마켓은 비단 낡은 물건만을 늘어놓은 장소가 아니다. 영감을 채집하고 주인들과 도란도란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며 흘러간 시간에 지긋이 눈을 맞추는 곳. 그러다 어쩐지 눈에 밟히는 물건이 있으면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만지작만지작 교감하며 고심하다가 마침내 손에 들고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P.203
벚꽃은 봄,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생과 유한함 같은 삶의 본성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불과 2주 동안 짧은 시기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의 꿈처럼 사라지는 속성을 가진 까닭이다. 이 웅장하지만 짧은 수명은 우리의 인생 또한 결코 길지 않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러니 이 인생에서 최대한 좋은 것을 보고 즐겨야 한다는 것,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P.208
동네 자치회가 소상공인들과 합심하여 시간과 품을 들여 함께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이 지도에는 구글 지도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자신의 숍에 대한 자부심, 숍을 낸 터전인 마을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애정이다. 비단 자신의 매장뿐만 아니라 내 옆의 매장, 우리 마을이 함께 번영했으면 좋겠다는 공통된 소망의 반영이다.
P.217
오모테나시는 진심만으론 부족하다. 자신의 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어떤 것이다. 오모테나시가 일본을 대표하는 서비스가 된 것은 이 진심에 ‘성의’라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 더해져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P.230
여기저기 깨지고 흠집나고, 또 흩어진 것들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단점과 불완전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 그것이 킨츠기와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P.232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비단 시간만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일본의 시간이고,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말 것.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것. 그러면 언젠가 일본의 흐름을 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266
일본 전역에 견고한 브랜드가 많은 이유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이러한 크루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나아가되 ‘따로, 또 같이’ 뭉치는 문화. 결국 함께 잘 살자는 것이다
넷. 맛집
P.295
도쿄는 요즘 유독 이런 분위기의 가게가 흔하다. 세련되면서도 적당히 캐주얼한 프렌치 비스트로. 오픈 키친에서는 셰프들이 달그락달그락 음식을 만들고, 바에 앉으면 가끔 주인과 눈을 맞춰가며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P.297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그립고 생각날 음식은 사실 스시도, 가이세키도 아니요, 돈가스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돈가스와 수준 차이가 유독 많이 나는 음식이란 얘긴데, 이 맛과 고기의 질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P.322
간단해 보이는 것이 실은 더 어렵다는 진리를 오므라이스가 말해준다. 재료가 심플할수록 실력은 적당히 뭉개거나 감출 수 없다.
P.335
오랜 액자 속 풍경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킷사텐이 주는 매력이다. 모든 것이 격변하는 세상이지만 때로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날엔 동네 킷사텐을 찾는다.
다섯. 사람
P. 401
그의 디자인에는 요즘 일본의 모던 디자인을 대표하는 요소가 모두 담겼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 각이 져 있지만 어딘가 둥글려진 정제된 형태, 서정적인 정물화 같은 미감이 그러하다. 이 그릇들로 식탁을 꾸미면 일상을 채우는 음식들도 전부 예술의 경지로 업그레이드될 것만 같다.
P. 422
그녀는 일본이 디테일의 나라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성실함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동안 만난 디자이너들이 빠짐없이 해준 이야기였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해야겠다. 그건 상대방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오모테나시’적인 성실함일 거라고.
P.450
인터뷰 끝까지 그는 움직임을 강조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매일을 살며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이 보일 거라고, 그것이 자연적인 흐름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이 마음을 다해 하는 것들을 어디선가 지켜봐 주고 연결해 주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끈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물처럼 파도처럼 상황에 맞게 흘러가면 된다고.
글 · 사진: 이민경
출판사: 진풍경
분야: 경제경영 > 브랜딩
출간일: 2022년 7월 01일
면수: 532쪽
판형: 140×205 mm
ISBN 9791197915277 (0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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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큐레이션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