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의 파스카

29,000원
지은이: 가비노 김
출판사: 미진사
사이즈: 150*226mm
쪽수: 664쪽
출간일: 2021년 11월 30일 발행
ISBN: 9788940806494 (03600)
분류: 미술비평 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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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의 파스카

기후변화, 탈식민화, 반세계화를 위한 스물두 가지 물음들

PASCHA OF CONTEMPORARY ART

 

 

 

이 책은

기후변화, 탈식민화, 반세계화에 관한 동시대 미술가들의 다양한 실천을 다룬 교양서

 

 

 

책 소개

 

착취와 빈곤, 폭력이 만연한 오늘의 세계에서 미술과 미술가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인류세로 불리는 지금 여기의 행성 지구,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명의 현존 방식에 문제의식을 둔 동시대 미술가들을 소개한다. 고통의 현장에 다가가 외면당한 자/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떠도는 무수한 작은 빛”과 같은 미술실천들. 저자는 그 태도와 행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세심히 관찰해서 정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 장으로 전한다.

이 책에서 동시대 미술의 기준은 1989년이다. 이 해에 베를린 장벽 붕괴, 텐안먼 사건, 월드와이드웹의 등장 등 세계 정치사회문화의 지형을 바꾼 일들이 일어났으며 미술계 역시 크게 영향받았다. 다만 여기서는 동시대 미술을 하나의 시대구분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동시대성의 3대 전환인 세계화, 탈 식민화, 기후변화로 수렴하는 독특한 미술 현상으로 이해한다. 저자는 특히 제삼천년기(2001-3000) 초반에 심미적 자율성과 개인의 자유 개념을 뛰어넘 어 사회정의와 생태적 번영을 추구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반란적 상상 실험실’을 마련한 미술가들에 집중한다.

책 제목의 ‘파스카(pascha)’는 옛 히브리말의 그리스어 음역으로, 우리말로는 ‘지나가다, 건너가다’의 의미이다. 눈앞의 세계를 그저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서 기꺼이 가로질러 건너가는 이들의 뜨거운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저자가 우리말로 지구미학(geoaesthetics)의 범주에서 동시대 미 술을 다룬 첫 책이라는 점도 뜻깊다. 동시대 미술과 행성지구의 문제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와 연구자, 예술의 대항정치적 역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읽 기를 권한다.

 

 

 

출판사 서평

 

우리 공동의 집인 행성지구

착취와 빈곤과 폭력의 현장에 다가서는

동시대 미술실천, 그 떠도는 작은 빛을 향한 행성적 사유의 기록

 

언젠가부터 인류세나 자본세 같은 용어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인간 생활방식의 급변에 따른 지구 생태의 현재를 일컫는 새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들이 지칭하는 현상은 그리 새로울 게 없다. 기후변화, 급격한 세계화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불러일으킨 영향과 폐해는 2000년대 이후 일상 대화에서, 뉴스 화면에서, 대담과 논고에서 수없이 다루어져 왔다. 다만 새 말은 현상을 새삼 비추어내며 눈앞에 반사광을 드리운다. 사고에 균열을 내 고 의식과 행위의 전환을 요청하는 한 줄기 섬광. 이 섬광에 다시금 시선이 모여들고, 익숙한 문제가 낯선 표현 속에 재부상한다. 그러나 새 말들은 개 념의 유희 속에 현학적으로 소비되다 퇴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 인류세와 자본세의 운명은 어떠할까.

 

이 책 『동시대 미술의 파스카』는 인류세로 불리는 지금 여기의 행성지구,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명의 현존 방식에 문제의식을 둔 동시대의 미술을 다룬다. 착취와 빈곤, 폭력이 만연한 오늘의 세계에서 미술과 미술가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선 미술이 지상과 괴리된 순수한 영역의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 삶의 다양한 양상, 인간을 감싸 안은 지구의 생태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말을 기꺼이 공유하면서도 그 섬광에 갇히지 않고, 고통의 현장에 다가가서 외면당한 자/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떠도는 무수한 작은 빛(lucciole)”(조르주 디디 위베르만)과 같은 미술실천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들의 태도와 행위를 깊이 생각하고 세심히 관찰하여 그 의미를 정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전한다.

 

글로벌에서 행성으로, 창작에서 실천으로

동시대성의 3대전환─기후변화, 탈식민화, 반세계화에 관한 미술의 물음과 그 의미

 

동시대 미술을 다루려면 미술에서 ‘동시대’란 언제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책의 기준점은 1989년이다. 이 해에 베를린 장벽 붕괴, 텐안먼 사건, 월 드와이드웹의 등장 등 전 세계 정치사회문화의 흐름을 바꾼 일련의 일들이 일어났으며 미술계 역시 크게 영향받았다. 이 사건들은 역사적 코뮤니즘(현실 사회주의)의 종말, 독립적인 좌파 정치문화의 와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승리와 연관되며, 전 세계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체계 아래에서 획일화되 는 현상을 불러왔다. 또 인터넷의 대중화에 따른 새로운 인간관계와 교환체계, 직접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하는 디지털 시대의 물꼬가 트였다. 미술계에서 는 ‘변방’ 지역에서 미술이 급성장했고, 동유럽과 러시아 미술이 유럽으로 들어가 지형을 변화시켰다. 중국 미술가들은 서구의 미술평론과 작품 유통체 계에 도전하는 미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아랍이 경제 성장에 힘입어 미술의 허브로 떠올랐다. 비엔날레와 개인 소장품으로 운영되는 사립 미술관이 다수 생겨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다만 저자는 동시대 미술을 하나의 시대구분으로 수용하기보다는 1989년의 사건들이 불러일으킨 동시대성의 3대 전환, 곧 세계화, 탈식민화, 기후변 화로 수렴하는 독특한 미술 현상으로 이해한다. 동시대 미술 모델은 천부적 ‘재능’보다는 현실에 접근하는 ‘태도’에 무게를 두며, 꾸준히 ‘개념적인 것’을 창안하고 그 예술적 효과의 구축을 목표로 삼는다. 미술실천의 양상도 확연히 다르다. 저자의 관심 대상인 동시대 미술가들은 탈순수 미술의 흐름에 위 치하며, 대부분은 메이저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와 대중매체의 관심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독립연구자이기도 한 이들은 형식과 내용에서 기존 범주와 매 체에 얽매이지 않고, 조사연구는 물론 현장으로 떠나 원주민들과 만나고 때로 시위에 동참하면서 작업의 외연을 미술의 지평으로 확대하며 학제적 (interdisciplinary)으로 실천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행성적 연대와 사랑,

그 ‘가능한 불가능성’이자 ‘불가능의 리얼리즘’을 향하여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부록을 제외하고 총 다섯 장의 본문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에서는 구체적인 미술실천을 하나씩 들여다보기 전에, 동시대 미술의 시점과 특성을 정리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정립한다. 제2장부터 제4장에서는 각 일곱 꼭지에서 기후변화, 탈식민화, 반세계화라는 큰 주제 아래 서른두 팀의 미술가들을 탐색한다. 저자는 특히 제삼천년기(2001-3000) 초반에 심미적 자율성과 개인의 자유 개념을 뛰어넘어 사회정의와 생태적 번영 을 추구하면서 ‘반란적 상상 실험실’을 마련한 이들에 집중한다.

 

제2장 “기후변화: 동시대의 생태 전환”에서는 기후변화와 인권, 환경정의에 관련된 미술실천을 다룬다. 해양 플라스틱을 살아 있는 행위자로 바라보 는 개념미술가 마텐 반덴 아인드, 바닷속 소리의 풍경을 수집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야나 빈데른과 세계의 냄새를 채집하는 시셀 톨라스, 땅을 부동산으 로만 생각하는 인식에 균열을 내며 토양의 초상을 선보이는 클레어 펜테코스트, 토양오염 문제를 다루는 멜친, ‘기후난민’ 문제에 집중하는 아르고스 콜 렉티브를 만날 수 있다. 또 대기오염 문제를 주시하면서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의 허점을 파고드는 에이미 발킨, 재난자본주의와 환경재난의 현실을 고 발하는 이사벨 카보넬에 이어, 빙하 문제와 관련해서 타바레스 스트라챈, 올라퍼 엘리아슨, 플라토레지두, 세브랑 겔파, 오토 후데츠 등을 살핀다.

 

제3장 “세계화: 동시대성의 전 지구적 전환”에서는 세계화와 동시대 미술의 관계를 다룬다. 팔레스타인의 존재상황에 주목한 에밀리 자시르, 초국적 빅테크 기업의 지배 속에서 인간의 노동가치를 재평가하려는 마누엘 벨트란, 디지털 슬럼가인 딥웹을 실험장소로 삼은 !미디엔그루페비트닉, 동일본 대 지진 사건과 원전 문제를 사유하는 오톨리스 그룹의 실천이 그러하다. 또 글로벌 종자 생산유통 시스템의 폐해를 다루는 마리아 테레자 알베스와, 식품 생명공학의 배후를 들여다보는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 글로벌과 로컬 사이의 공간을 영상 설치작품으로 구현하는 에르긴 차부소울루도 있다. 마지막 부 분에서는 미술시장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비엔날레를 하나의 유의미한 현상으로 탐색한다.

 

이어 제4장 “탈식민화: 동시대성의 탈식민적 전환”에서는 석유자본주의의 식민지배구조에 맞선 미술가들의 실천에 주목한다. 다중 정체성을 간직한 채 추방과 상실의 개인 경험을 역사에 연결하여 반(反)다큐멘터리로 구현하는 자리나 빔지, 빈곤포르노의 동작 방식을 폭로하는 렌조 마텐스, 제국주의 에 봉사하는 사진들의 정오표를 만들고 박물관의 탈식민화를 시도하는 아리엘라 아이샤 아줄레, 국가 없는 민족의 현실을 다루는 조나스 스탈의 작업이 그러하다. 또 인종차별 문제와 아프로퓨처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마틴 심스, 브라질 사회의 위태로운 삶에 주목한 베르나 헤알리, 오늘날 세계의 시중 계급인 가사 및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시각화하는 라미로 고메스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종합적 시도로서 우르술라 비이만의 영상작업들을 탐구한다. 본문 후에는 일백여 페이지의 부록을 통해 이 책의 서술과 관련된 논저와 각종 자료를 안내하고, 동시대 미술에서 주목할 만한 미술가 외의 인물들을 ‘인물열전’이라는 이름 아래 소개한다.

 

책 제목의 ‘파스카(pascha)’는 옛 히브리말의 그리스어 음역으로, 우리말로는 ‘지나가다, 건너가다’의 의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동시대 미술가들 은 눈에 띄는 것들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서서 기꺼이 가로지른다. 이들은 인간이 인간에게, 다른 생명에게, 행성지구에 가하는 착취와 빈 곤과 폭력 앞에 멈추어 선 채로 현장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속속들이 껴안고서 ‘건너간다.’ 저자가 표현하듯 행성적 연대와 사랑이라는 말 로 아우를 수 있는, 이 미술가들의 뜨거운 실천을 마주한 독자들은 그저 글을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더불어 현장을 겪고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될지 모른다. 국내 저자가 우리말로 지구미학(geoaesthetics)의 범주에서 동시 대 미술을 다룬 첫 책이라는 점도 뜻깊다. 동시대 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와 연구자, 미술과 삶의 문제 그리고 예술의 대항정치적 역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책 속으로

 

세상은 종말로 치닫고 있는데, 미술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가? 미술은 착취와 빈곤과 폭력 앞에서 눈을 감았는가? 미술은 초주검이 된 세상을 보고도 모 르는 체하며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렸는가?

--- 프롤로그

 

동시대 미술은 현대 미술의 죽음을 기념한다. 이때 현대 미술이란 순수 미술을 계승한 미술, 말하자면 ‘미술을 위한 미술(자율성)’을 부르짖으며 매체에 끝없이 몰두하는 미술(매체중심주의), 사회에 무관심하고 제1세계 북반구 서양이 정의한 대로 따라야 하는 전문적이고 현학적인 미술 (...) 하지만 순수 미술에서 벗어나길 주장하는 탈순수 미술의 흐름이 있었다. 이들은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참극을 목격하며 미술이 도대체 인생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깊이 고민했다. 전통 매체에 연연하지 않고 작업하며 탈순수 미술 전략을 택했던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에서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 주의(surrealism), 마르셀 뒤샹 등과 함께 이른바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논하려는 동시대 미술은 바로 탈순수 미술 의 역사 안에서, 본격적으로 감지되지는 않았으나 오랜 시간 동안 꿈틀대며 양분을 흡수하고 있었을, 바로 그 잠재적 힘에 주목한다.

---- 제1장. 동시대 미술, 동시대를 묻다

 

이 책은 세 번째 밀레니엄(2001-3000)의 미술을 염두에 두면서 제삼천년기 초반의 미술을 다룬다. 하지만 엄격한 분석을 동반한 동시대 미술 연구서는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 미술가들이 동시대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사유하는 자원이자 연료에 가깝다. 동시대 미술을 통해 우 리는 미술가가 어떻게 동시대 세계를 바라보는지 배울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의 목표는 심미적인 것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데 있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가며 관람객과 소통하는 데 있다. 여기서 관점이란 과거로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선, 곧 잔존하는 흔적을 추적하는 행위를 뜻하며, 소통이란 궁극적으로 사고방식의 변화, 나아가 행동의 변화를 포함한다.

---- 제1장. 동시대 미술, 동시대를 묻다

 

아름다운 진주 같은 사진 속 지구는 너무나도 깨끗하다. 너무 깨끗해서 굶주림과 절망에 짓눌린 지구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더러운 물도, 시커먼 매연 도, 바다를 떠도는 쓰레기 섬도, 핵발전소도 보이지 않는다. 환경오염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현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진처럼 우리의 푸른 행성, 지구는 언제고 푸르를 것이다. 온도상승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공학적 기술이 나타나면(하지만 지구가 우리의 ‘관리’를 받는 대상일까?), 우리 강산은 다시 푸르름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는 쓰고 버리는 기존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 후변화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 미술가들은 이러한 논리를 견디지 못한다. 동시대 미술가들은 우리의 관심 바깥에 놓 인 기후변화 문제, 다시 말해 스펙터클하게 굴러가는 기업형 언론의 시계(視界) 바깥에 놓여 있지만 느리고도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는 재난에 대한 우 리의 무관심을 파고든다.

---- 제2장. 기후변화: 동시대성의 생태적 전환

 

2017년 작가는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관계를 탐험하며 남편 브라이언 홈스와 함께 미국 키카푸밸리 유역에서 토양 샘플을 채취했다. 이어 질산은 0.5퍼센트 용액으로 여과지를 준비하고, 토양의 성분을 미네랄과 유기물 등으로 나누기 위해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사용했다. 아울러 토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독일의 토양과학자 에렌프리트 파이퍼가 개발한 방식을 참고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상 처음으로 토양의 초상화가 나타났다. 바꿔 말하자면, 토양이 지닌 각각의 고유한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마치 78억 인구의 얼굴이 상이한 것처럼, 땅은 미생물의 개체 수와 상태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다. (...) 땅은 살아 있다. 땅은 인간의 논리나 언어에 갇혀 있는 개념 따위가 아니다. 땅은 지적법(地籍法)에 따라 구분되는 28가지 지목의 경계를 넘어선다. 땅은 파괴하지 않고 회복하는 시스템이다. 땅은 스스로 유독성 폐기물을 만들지 않고, 오히려 모든 분비물을 재활용한다. 땅은 아무것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아낌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땅은 우리 어머니 대지(our mother Earth)다. 자녀가 어머니의 일부였듯, 인간은 땅에 속해 있다. 작가가 강연이나 대담을 할 때마다 마지막에 항상 던지는 물음이 있다. “풍족한 삶이란 무엇인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먹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 제2장. “03 우리 어머니 대지”

 

빙하가 사라지는 광경을 연출하기 위해 자연환경에서 빙하를 꺼내오는 문제가 어떻게 정당성을 얻느냐는 문제는, 사실 지난 2014년 엘리아슨이 이 작품 을 처음 선보였을 때 이미 제기됐다. 당시 작가는 탄소발자국에 연연하지 않았다. 운반에 들어가는 연료뿐 아니라 운반 과정에서 빙하를 얼음 상태로 보 존하기 위한 냉동고의 연료가 분명 화석연료였음에도, 그는 오로지 재료의 물질성에만 몰두했다. (...) 작가는 이 ‘얼음덩어리’를 보고 만지고 느끼고 냄 새 맡는 과정을 통해 기후변화라는 리얼리티를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경험하길 원했다. 하지만 (...) 대부분의 관람자들에게 있어 자연의 자율성이나 자연 그 자체의 권리는 경시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빙하가 급속도로 녹는다는 교훈적 측면은 새삼스럽게 되새길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 을 고수하면서 이 작품을 그저 눈요깃거리나 체험형 장난감 정도로 소비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실제로 녹고 있는 빙하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 제2장. “07 후빙기의 울부짖음”

 

브라질 북서부 마나우스의 전통시장. 아마존 원시림의 열대과일들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둥글지만 유난히 다채롭다. 각각의 고유한 이름이 있을 것 같다. 브라질 동시대 미술가 마리아 테레자 알베스는 유일무이한 그 이름들을 상점 주인에게 물었다. 허무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간명했다. 살구. 이것들 은 모두 살구다. 이들은 모양도 크기도 색도 각각 다르지만 ‘살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작가는 유럽의 식민주의적 탐험과 자본주의의 세계화 전략 이 “토착민의 지식과 지역의 어휘를 파괴”했음을 일깨우려고 다양한 ‘살구’를 수채화로 그렸다. 형형색색의 상이한 살구 형상 아래에는 “이것은 살구가 아니다” 라는 텍스트와 함께 실제 토착이름이 병기돼 있다. 예컨대 코코플럼(Chrysobalanus Icaco), 난세(Byrsonima Crassifolia) 등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 반>(1928-1929)에 담긴 텍스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즉시 연상시키는 문장이지만, 그다지 복잡한 해석은 필요없다. 말 그대로, 이것은 살구가 아니라 난세이며, 이것은 살구가 아니라 코코플럼이다.

---- 제3장. “05. 누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가”

 

작가는 캠코더를 들고 직접 이 그물망 한가운데로, 모순과 실패가 가득한 자리로 들어간다. 허름한 보트를 타고, 맨발로 질척이는 늪지를 건너고, 민간 금광채굴 현장으로 들어가고, 유엔군과 시민군의 영역을 가로지르고, 희생양이 된 시체를 촬영하는 백인 사진가의 무리를 뒤쫓는다. 그가 <빈곤을 즐기세요>에서 현장에 개입한 자신의 모습을 ‘셀피(selfi)’ 형식으로 끊임없이 노출하는 까닭은, 한낱 미술가가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관람자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 다. 오히려 기본적으로 세 가지 해석의 층위를 암시한다. 첫째, 작가 스스로가 먼저 (콩고인들의 ‘외부’가 아니라) 현장에서 생산된 이미지의 일부가 되었음을 의 미하며, 둘째, 사회정의, 비판적 미술, 정치적 미술실천 등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미술조차도 식민주의의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무력감을 가시화하는 것이고(영화 내내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셋째, 백인 유럽인으로서의 자화상을 폭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 제4장. “02 빈곤을 즐기세요”

 

그녀는 브라질 파라연방대학에서 미술로 학위를 받은 뒤 브라질 법의학연구소(Instituto Médico Legal)에서 8개월 동안 사진작업을 수행했다. 그곳에 도착한 시 신들은 침묵하고 있었으나 하나같이 안타까운 이야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들어줄 귀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녀는 범죄 전문가 선발을 위한 공개 시험에 지원해 2년 동안 시험을 치르고 마침내 아마존 파라주의 공식 범죄과학수사 전문가가 됐다. 이 특별한 이력은 미술가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 보기만 해도 끔찍한 유골들이 수레에 실려 시내 한가운데를 지난다. 작가는 살인 피해자들의 유골 40점을 직접 수레에 싣고 옮긴다. 침통한 표정의 작가는 관람자들과 소리 없이 죽어간 이들을 대면시키며 침묵으로 말한다. 충격적인 사건들을 기억하라고. 여기서 관람자들이 집단적으로 소환하는 기억 은 그네들의 몸을 통해 재구축된다.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작가의 몸, 거리를 누비는 유골에 붙어 있었을 살, 그리고 관람자들의 ‘위태로운’ 육신들이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관람자들은 사회적 불안정 때문에 운이 나쁘면 얼마든지 신원미상의 시신 처지가 될 수 있다. (...) 작가는 공공장소에서 이 유골을 드러냄으로써, 세상 을 먼저 떠난 이들의 유령적 증언을 소환한다. 작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물음을 던진다. 어떤 기억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어떤 목숨이 기억할 만한 가치 가 있는가? 역사는 무슨 기준으로 기록할 만한 가치를 ‘결정’짓는가?

---- 제4장. “06 위태로운 삶의 퍼포먼스”

 

그녀의 에세이 영화는 ‘마음에 관한 도상학 색인(iconographic index of the mind)’이기도 하다. 물리적 풍경을 본 관람자가 마음의 눈으로 해석하고 비교하며 고유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의미화를 기다리며 보이지 않게 우글거리는 색인들이 모여 있다는 의미에서다. 작가가 영상으로 시각화한 일부 장소는 사실 상상 의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정치적 상상력이 동시대를 견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동시대 이후의 세계를 꿈꾼다. 그녀는 말한다. “물질의 온갖 위기는 사유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그녀가 행성지구의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에 주목하는 동시에 미술가의 내면적 성찰과 함께 현실을 ‘공동으로-창조하는 (co-creating)’ 까닭이다. 직접적이고 물질적으로 이 세계에 참여하되, 공동-창조를 위한 사유를 촉발시키는 것. 이제 미술가의 상상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미술가의 꿈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앞당긴다. 그 방향, 그 세계는 무엇일까?

---- 제5장. “우르술라 비이만의 꿈”

 

미술 분야에서 행성주체는 단순히 ‘수동적인 관람자’로 남길 거부하고,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소비자’에서 탈피하며, 식순을 정확히 준수하는 행사에 참가해 박 수 치고 인증샷을 남기는 ‘구경꾼’에서 벗어난다. 관람자 경험을 넘어 ‘참가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이들의 경험, ‘우리’는 사유하는 이들이고 ‘너희’는 수동적 으로 받아들이는 대상에 불과하다는 갈라진 존재론을 거부하는 이들의 경험. 이들은 자기비판을 수행하며 새롭게 거듭나고 저항한다. 이제 관람자는 수신인이면 서 발신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중의 정체성이 미술가들에게도 적용된다. 행성주체의 도래와 함께 동시대 미술가는 전문가 영역에서 벗어 나 폭넓게 공유되는 일상의 실천으로 ‘건너가서’ 작업한다. 궁극적으로 행성주체는 관람자와 미술가의 구분을 지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행성적 연대를 실 천한다. 작가 중심에서 관람자 경험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행성주체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있다. 여기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낡은 이분법에 기반해 서로의 역할을 규정짓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 에필로그

 

 

 

이 책의 독자

동시대 미술과 지구미학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이상의 일반 독자와 연구자

 

 

 

지은이 소개

 

가비노 김 Gabino Kim

부산 가톨릭대 신학대학과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세기 신학계의 최고 지성 중 하나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의 신학적 미학 방법론에 따라 사도신경 구절 ‘descensus ad inferos(저승에 가시어)’에 대한 연구(2008),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조형원리인 아라베스크(arabesque) 연구와 이브알랭 부아(Yve-Alain Bois)의 원형적 드로잉 분석 연구 (2018)로 각각 학위를 받았다. 라이문트 슈바거(Raymund Schwager)의 「오늘날 문화적 모체로서의 원죄」(2008)를 공역했다.

미술을 둘러싼 정치·사회·생태·교육·종교 분야에 관한 연구들을 중심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학제적인 대화와 만남, 평화의 문화를 일구는 과업을 이어가 고 있다. 유럽 동시대 미술가들에 관한 몇몇 평론을 집필했으며, 신유물론에 기반한 작가론 『DAVID ALTMEJD: 자라나는 오브제』(좋은땅, 2019), 종교 와 미술의 만남을 다룬 『앙리 마티스, 신의 집을 짓다: 방스 로사리오 경당의 탄생과 한 예술가의 삶』(미진사, 2019)을 출간했다. 교황청 공식매체 『바 티칸 뉴스 VATICAN NEWS』 한국지부에서 편집을 맡고 있다. 정신장애인 대안언론 『마인드포스트 MINDPOST』 창간위원 겸 편집인이며, 중앙정신건강 복지사업지원단에서 정신장애인 사건사고 보도에 대한 편견·혐오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책의 차례

 

프롤로그. 우리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제1장. 동시대 미술, 동시대를 묻다

동시대 미술이란 무엇인가? │ 보자르 모델과 동시대 미술 모델 │ 동시대 미술의 시대구분 │ 동시대성의 3대 전환 │ 방법론

제2장. 기후변화: 동시대성의 생태적 전환

01 플라스틱 산호초 / 마텐 반덴 아인드

02 바다를 듣다, 바다를 냄새 맡다 / 야나 빈데른, 시셀 톨라스

03 우리 어머니 대지 / 클레어 펜테코스트, 멜친

04 기후난민 / 아르고스 콜렉티브

05 우리를 둘러싼 대기 / 베른나우트 스밀더, 에이미 발킨

06 재난 이후의 풍경 / 이사벨 카보넬

07 후빙기의 울부짖음 / 타바레스 스트라챈, 올라퍼 엘리아슨, 플라토레지두, 세브랑 겔파, 오토 후데츠

제3장. 세계화: 동시대성의 전 지구적 전환

01 팔레스타인 난민과 이동의 시론 / 에밀리 자시르

02 미래의 인간 노동 / 마누엘 벨트란

03 다크웹에서 봇이 구매한 것들 / !미디엔그루페 비트닉

04 핵,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 / 오톨리스 그룹

05 누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가 / 마리아 테레자 알베스,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

06 글로벌과 로컬의 사이에서 / 에르긴 차부소울루

07 변방의 비엔날레 / 베니스 vs 아바나

제4장. 탈식민화: 동시대성의 탈식민적 전환

01 상실의 기술 / 자리나 빔지

02 빈곤을 즐기세요 / 렌조 마텐스

03 에라타: 박물관의 탈식민화 / 아리엘라 아이샤 아줄레

04 로자바: 국가 없는 민주주의 / 조나스 스탈

05 일상의 아프로퓨처리즘 / 마틴 심스

06 위태로운 삶의 퍼포먼스 / 베르나 헤알리

07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경의 / 라미로 고메스

제5장. 종합. 우르술라 비이만의 꿈

‘기상’과 ‘깊이’ 연결된, 얽힌 세계들 │ 연결과 경계를 묻다

 

에필로그. 동시대성의 파스카: 행성적 전환으로 건너가는 시간

주석 │ 참고도서 │ 도판목록 │ 인물열전 │ 인명색인 │ 후기

 

 

 

 

 

 

지은이: 가비노 김 

출판사: 미진사 

사이즈: 150*226mm 

쪽수: 664쪽 

출간일: 2021년 11월 30일

발행 ISBN: 9788940806494 (03600)

분류: 미술비평 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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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의 파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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