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낮으신
책 소개
독자들을 사색으로 이끄는 시적인 언어와 간결하고 독특한 문체로 자신만의 음악을 탄생시켰다고 평가받는 크리스티앙 보뱅이 13세기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삶을 그려냈다.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극히 낮으신>은 1992년에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1993년 되마고상, 프랑스 가톨릭 문학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식 방송 중에 가브리엘 랑레는 이 책을 인용하며 크리스티앙 보뱅을 ‘위대한 시인’이라 말한 바 있다.
보뱅은 13세기 성인의 삶을 통해 21세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리란 무엇인가, 믿음과 사랑은 무엇인가. 그렇지만 보뱅은 그 답이 결코 책 안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답변은 책 안에 있기보다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답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몸과 정신과 영혼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그리하여 보뱅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나열하거나 교훈을 전달하려고 하는 대신 성인의 삶에 끼어드는 사건과 장면들을 포착해 윤곽을 그리며 가볍고 정확한 터치의 언어로 그 안에 담긴 은총을 전달한다. 그리하여 짧은 숨결의 문장이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처럼 다가와 우리 안에 스며든다’.
그 아름다운 문장들이 우리가 배워온 모든 것들의 위계를 불현듯 뒤집어 놓는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지극히 낮으신 하느님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진리는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있음을. 충족 속에 있기보다 결핍 속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영혼의 성장은 몸의 성장과는 반대로 이루어짐으로 어른이 꽃이라면 어린이가 열매임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리하여 만나게 되는 것은 기쁨. 어린아이의 순전한 기쁨, 기쁨에 넘치는 사랑이다.
출판사 서평
진정한 믿음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1993년 되마고상, 프랑스 가톨릭 문학대상 수상
13세기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삶을 통한 깊은 사색과 깨달음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믿음과 사랑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독자들을 사색으로 이끄는 시적인 언어와 간결하고 독특한 문체로 자신만의 음악을 탄생시켰다고 평가받는 크리스티앙 보뱅이 13세기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삶을 그려냈다.
“신앙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다. 종교가 아니라 신성한 것들로 가득한 글이다.”
“그의 문장과 단어들은 모두 시와 같아서 순수한 행복을 느낀다.”
“이 책의 가치는 단지 정교하게 세공된, 시적이고 의미가 깊은 언어 사용에만 있지 않다. 보뱅이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본질에 대한 사색이야말로 이 책의 가치다.”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극히 낮으신>은 1992년에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1993년 되마고상, 프랑스 가톨릭 문학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식 방송 중에 가브리엘 랑레는 이 책을 인용하며 크리스티앙 보뱅을 ‘위대한 시인’이라 말한 바 있다.
가난한 자들의 얼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하느님을 노래한 음유 시인이며 가난한 이들의 친구, 동물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프란체스코. 13세기 초 청빈을 신조로 ‘작은 형제회’를 조직하고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교회 내부의 개혁 운동을 이끈 탁발 수도승이다. 우리에겐 무엇보다 <평화의 기도>와 <태양의 노래>로 기억되는 성인. 리스트는 그의 삶에 감복해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작곡했고, 그의 삶을 연작 벽화로 그린 조토의 그림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몹시 친근한 성인이다.(옮긴이의 말)
"우리는 그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며, 이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를 진정으로 알게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프란체스코는 12세기 말,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부유한 상인의 가정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 술과 여자와 노름을 즐기던 청년은 기사도와 영광을 꿈꾸며 전쟁에 나가지만 포로가 되고 감옥에 갇히고 병으로 쇠약해져 그곳을 벗어난다. 하지만 그 어두운 감방에서도 그는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포로가 된 동료들을 위로한다. 이는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부터 온 기쁨의 발견이다. “우리가 정말로 살고 있는 곳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곳이 아니라, 무얼 희망하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희망하는 그곳이며, 무엇이 노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노래하는 그곳”이기에. 고향으로 돌아온 프란체스코는 삶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 삶을 버리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또다시 전쟁일 일어나고, 길을 떠난 그는 스폴레토라는 도시에서 잠 속에 찾아든 하느님을 만난다. 천둥 같은 목소리로 호령하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 아닌, 잠든 이의 귓속에 대고 속삭이는 ‘지극히 낮으신’ 분을. 페루자의 감옥, 아시시에서 앓은 병, 스폴레토에서 꾼 꿈. - 이 세 가지 은밀한 상처로 인해 야망의 나쁜 피는 사라져 버린다. 친구, 여자, 노름에서 얻는 즐거움은 시들해지고, 이 땅에서 젊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소망하게 된다.
진리는 분명 높은 곳에 있기보다 낮은 곳에 있음을,
충족 속에 있기보다 결핍 속에 있음을.
성인의 본질을 정의하고,
순전한 사랑과 어린아이의 기쁨을 찾아가는 여정
“우리는 이제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진리는 섹스에 있고, 경제에 있고, 문화에 있다. 우리는 이 진리의 궁극적인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안다. 다름 아닌 죽음이다. 우리는 섹스를 믿고, 경제를 믿고, 문화를 믿고, 죽음을 믿는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결정적인 한마디는 결국 죽음이라 믿는다. 죽음이 이를 갈며 먹이를 단단히 물고 있다고.”
보뱅은 13세기 성인의 삶을 통해 21세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리란 무엇인가, 믿음과 사랑은 무엇인가. 그렇지만 보뱅은 그 답이 결코 책 안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답변은 책 안에 있기보다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답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몸과 정신과 영혼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그리하여 보뱅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나열하거나 교훈을 전달하려고 하는 대신 성인의 삶에 끼어드는 사건과 장면들을 포착해 윤곽을 그리며 가볍고 정확한 터치의 언어로 그 안에 담긴 은총을 전달한다. 짧은 숨결의 문장이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처럼 다가와 우리 안에 스며든다.
그 아름다운 문장들이 우리가 배워온 모든 것들의 위계를 불현듯 뒤집어 놓는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지극히 낮으신 하느님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진리는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있음을. 충족 속에 있기보다 결핍 속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영혼의 성장은 몸의 성장과는 반대로 이루어짐으로 어른이 꽃이라면 어린이가 열매임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리하여 만나게 되는 것은 기쁨. 어린아이의 순전한 기쁨, 기쁨에 넘치는 사랑이다.
“어른스럽고 성숙하며 이성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 앞에선 어른이 없으며 누구나 아이가 된다. 완전한 신뢰와 무사태평을 특징으로 하는 아이의 마음, 영혼의 방치가 있을 뿐. 나이는 합산을 하고, 경험은 축적을 하며, 이성은 무언가를 구축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은 아무 계산도 하지 않고, 축적하지도 구축하지도 않는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태초에서 다시 출발해 사랑의 첫발을 떼어 놓는다. 이성적인 사람은 축적되고, 쌓이고, 구축된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이런 합산의 결과물인 사람과는 반대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있으며, 만물의 탄생과 더불어 매번 다시 태어난다. 공을 갖고 노는 바보, 혹은 자신의 하느님에게 이야기하는 성인聖人이다. 동시에 둘 다거나.”
“너를 사랑해. 이것이 그가 하려는 말 전부이다. 거기서 어떤 독창적인 책, 작가의 책이 탄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으니까. 사랑은 작가의 발명품이 아니니까.”
책 속의 문장
일상의 삶에서 진정한 말들이 오가기란 아주 어렵다. 그런 말들은 몹시 드물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마침내 우리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책의 페이지를 여는 순간 비로소 듣기 시작하는 건지도. - 13
순수한 아름다움이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다면,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랑은 어떤 질료로 이루어지며, 사랑의 초자연성은 어떤 본성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아름다움은 사랑에서 온다. 사랑은 관심에서 온다. 단순한 것에 대한 단순한 관심, 소박한 것에 대한 소박한 관심, 생명 일체에 대한 열렬한 관심. - 28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린다고 하자. 그녀는 올 것이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약속했으니까. 이 길을 따라 올 것이다. 우리는 지평선에 눈을 고정하고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녀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미 여기 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풍경 속에는 다양한 규모의 대상들(숲, 집, 도로)이 있다. 마침내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그것들이 풍경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길 끝에 보이는 가느다란 실루엣이 대번 숲과 집들과 도로보다 더 커다랗게 보인다. 측량 기사의 눈에는 먼 곳의 한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온 우주보다 더 큰 무엇이 된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보기 마련이다. 우리의 희망에 상응하여 보기 마련이다. -43
한마디 말이 우리를 열에 들뜨게 한다. 이 한마디가 우리를 침상에 못 박는다. “삶을 바꾸라.” 이것이 목표다.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그러나 목표에 이르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병은 길의 부재며, 수단의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어떤 물음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다. 우리 자신이 물음이다. 새로운 삶. 그것을 우리는 바라지만, 옛 삶에 속한 우리의 의지는 아무 힘이 없다. 마치 왼손에 쥔 구슬을 내미는 아이가 교환의 대가로 오른손에 동전이 쥐어질 때까지 구슬을 놓지 않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새 삶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옛 삶을 잃고 싶지는 않다. 과도적인 순간, 이 빈손의 시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 64
그림자로 가득한 몇 마디 말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 하찮은 사건이 우리를 생명에 내어 주기도, 우리를 거기서 떼어 놓기도 한다. 하찮은 사건이 만사를 결정한다. - 67
한 가지를 제외시킬 수밖에 없는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건 무無에 불과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말뿐인 사랑, 사랑 없는 사랑이다.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구멍이 숭숭 난 부서지기 쉬운 감정이다. - 71
성인은 미래로부터 오는 무언가를 향해 뱃머리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다. 온갖 천사들이 날라 온 하느님의 꽃가루인 현재를 수분受粉하기 위해서다. 성인은 가까운 것과 먼 것을,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살아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연결 짓는다. - 95
진리는 대단해 보이는 우리의 부富나 우리의 정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진리는 자체 안에 빛을 내포하며, 그걸 말하는 사람 안에 있지 않다. 진리는 초라하고 연약한 삶에 근접해 있을 때만 위대하다. 나사렛의 한 바보가 이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가 군중에 의해 왕으로 축성되지만 잠시 뒤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진리가 가장 위대한 순간은, 그것을 선포하는 이가 굴욕을 당할 때다. - 114
그가 그녀보다 먼저 죽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사랑은 처음 시작되는 순간, 첫 전율을 느끼는 순간 이미 시간에 대한 오래된 관념을 파괴하니까. 전과 후의 구별이 사라지고, 살아 있는 자들의 영원한 오늘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오늘뿐이다. - 129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삶이 남몰래 지향하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이 대상에 대고 말한다.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렇다. 그가 자신을 위해 선택한 이 대상에 만사가 달려 있다. 그가 침묵 속에서 대면하는 이 대상에 모든 게 달려 있다. 이 대상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그는 사실과 증거를 축적했으며, 이 대상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현재와 같은 삶의 모습에 이르렀다 - 134
사실 우린 그 무엇의 주인도 아니다. 우리가 창조해 낸 건 재빨리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우리의 작품이 우리를 모른다 하고, 우리 자식도 우리 자식이 아니다. 우리가 창조해 낸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사람에게 세월은 뱀의 껍질과 같아서, 햇빛 아래 한순간 반짝이다가 그에게서 떨어져 간다. - 149
작가 소개
크리스티앙 보뱅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동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맑은 문체로 프랑스의 문단, 언론, 독자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사랑 받는 작가.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크뢰조에서 태어나 2022년 11월 24일,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고독한 작가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마친 후 1997년 첫 작품인 『주홍글씨tpourpre』를 출간했고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의 삶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지극히 낮으신Le Très-Bas』이라는 작품으로 세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상, 되마고상 및 가톨릭문학대상, 조제프 델타이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옮긴이 소개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와 실비 제르맹의 소설들을 비롯해,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 『흰옷을 입은 여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11p -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 하나
25p - 사실 성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39p - 달콤한 무無
51p - 일각수, 불도마뱀, 귀뚜라미
63p - 그림자로 가득한 몇 마디 말
77p - 보세요, 전 떠납니다
93p - 사천 살, 그리고 먼지
107p - 내 형제 당나귀
121p - 여자들의 진영, 하느님의 웃음
133p - 노쇠한 하느님
145p - 당신들은 저를 사랑한다 말하면서 제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161p - 추한 이미지, 거룩한 이미지
169p 성 프란체스코, 가난한 자의 얼굴 (역자 후기)
지은이 : 크리스티앙 보뱅
옮긴이 : 이창실
발행처 : 1984BOOKS
장르 : 프랑스 문학, 에세이
페이지 : 176 pages
사이즈 : 120mm x 205mm
제본 : 무선제본
ISBN : 9791190533409 (03860)
발행일 : 2023년 8월 17일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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