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나의 첫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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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수정, 김남숙, 김상혁, 박사, 박연준, 서효인, 송경원, 유재영, 이다혜, 이명석
분야: 한국 에세이/영화 에세이
판형: B6판 변형 (120*205mm)
제본: 무선
면수: 152쪽
ISBN: 9791187789345 (03810)
출간일: 2021년 8월 31일
출판: 테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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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나의 첫 영화 이야기)

 

 

 

책 소개

 

당신의 첫 영화는 무엇인가요? 

 

첫 영화를 만났던 순간을 기억하는 것, 나를 돌아보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첫 친구, 첫 등교, 첫사랑, 이처럼 ‘처음’은 언제나 마음에 남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의 첫 영화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준 지난날을 추억하는 흥미로운 방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의 첫 영화는 무엇일까요?

 

시인,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여기 열 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첫 영화’를 이야기합니다. 신간 에세이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나의 첫 영화 이야기》에서요. 그들의 첫 영화가 무엇인지를 엿보면, 그들이 왜 지금의 그들이 되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들의 첫 영화를 만나볼까요?

 

첫 영화에는 가족이 있었다. 혹은 없었다

 

-김상혁의 첫 영화 이야기

열두 살 그는 처음 ‘우리집’으로 이사한 후 처음 맞는 토요일 밤 ‘주말의 영화’를 고작 몇 장면만 기억하지만, 그 가을 집 안팎 풍경과 사정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사한 새집에도 그의 방은 따로 없어 어머니와 함께 마루에서 지냈지만, 간헐적으로나마 독차지한 할아버지의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본 영화들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의 유년에 유일한 선물이었다.

 

-유재영의 첫 영화 이야기

1992년 여름 어느 일요일, 외출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 비디오플레이어가 들려 있었다. 처음으로 가본 세탁소 옆 비디오 대여점에서 중학생 그는, 온 가족이 ‘다 같이 볼만한 영화’를 고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고등학생 형의 눈빛에서 읽는다. 아이스크림과 소주와 함께 가족 시네마가 개봉하였고, 되감기가 끝난 뜨거운 비디오테이프를 기계가 토해내는 생소한 장면과 함께, 그는 생소한 장면 하나를 더 목격한다.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김남숙의 첫 영화 이야기

그날 일곱 살 그는 여자와 처음 손을 잡고 처음 영화관에 갔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파가 많은 곳에서만 여자의 손을 잡고 나머지는 빠르게 걷는 여자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았다. 그 당시 여자는 그의 말에 잘 대답해주지 않아서 그는 눈물이 왈칵 나왔지만, 이제 그는 어딘가에 여자를 여자라고 쓸 때면, 여자를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박사의 첫 영화 이야기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빠의 무릎께나 키가 닿던 나이에, 영화가 끝나면 짜장면을 사 준다는 아빠의 약속에 그는 중국집에 먼저 가 아빠를 기다렸다. 그를 혼자 로비에 내보내고 ‘막 달려가서, 막 쏘고, 막 죽는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젊은 아빠가 얼마나 피가 마르도록 그를 찾았는지, 엄마에게 얼마나 야단맞았는지 그는 듣지 못했다. 혼자 찾아낸 짜장면집이 단성사 근처였다는 건 기억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그 영화의 제목은 기억하지 못한다.

 

-서효인의 첫 영화 이야기

그의 첫 영화는 문화 회관인지 단관 극장인지도 모를 곳에서 본 몇 탄인지도 모르는 <우뢰매>이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가 기억하는 첫 영화는 ‘할머니’이다. 먼저 앉은 사람이 그 좌석의 임자가 되는 영화관에서 어린 손주를 위해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어른의 모습을 보였던 할머니. 지금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의 자리가 명당일는지, 다 자란 손주는 알 수 없어서 가끔 마음의 스크린이 시커멓고, 시커멓게 잊은 채로 시간은 간다.

 

나를 눈뜨게 한 첫 영화를 만나다

 

-이명석의 첫 영화 이야기

서울보다 삼사 년은 시간이 늦게 가는 소읍에 살았던 그는 고3 비 오던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대구로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를 보고 센티해진 그는 비를 맞으며 학교로 돌아간다. 20대가 된 그의 첫 유럽여행은 나선형 계단 호텔과 카페오레와 크루아상이 있는 카페테리아에서의 식사로 영화를 따라간다.

 

-송경원의 첫 영화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오후마다 있던 영화부 단체 관람 첫 영화에서 그는 한 장면을 기억한다. 이 장면의 두 주인공의 얼굴에 떠오른 형상을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영화를 말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동시에 이 온전히 영화적인 체험, 이 묘한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싹튼다. 

 

-이다혜의 첫 영화 이야기

그의 십 대 내내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들은 그의 취향의 핵심을 형성한다. ‘지구 최고의 속편’까지 나온 할리우드 모험 영화들은 그를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게 했고, 이야기의 패턴, 캐릭터의 패턴을 경험하게 했고, 수많은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게 했다. 비록 지금 그가 그 시절 그 영화들의 ‘막무가내의 낙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지라도, ‘세상 해맑고’ 싶을 때는 모험의 세계를 상상한다.

 

-박연준의 첫 영화 이야기

열네 살 그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 그에게 지나치게 높고, 어둡고, 심오했지만, 그는 이야기가 이야기로 흘러가는 순간을 어둠 속에서 지켜봤던 일을 기억한다. 영화는 그를 통과해 지나갔지만, 모두 다 지나간 건 아니다. 영화가 가져온 마음의 일렁임은 그 안에 머물러 있다.

 

-강수정의 첫 영화 이야기

첫사랑을 기억하는 그에게 첫 영화는, 실제로 세어보면 아흔두 번째이거나 백스물일곱 번째로 본 영화일지라도 단연 첫사랑의 열병에 관한 영화이다. 그의 첫 첫사랑 영화는 그에게 다시 한번 첫사랑을, 혹은 지금의 사랑에게서 또다시 첫사랑을, 느끼게 한다.

 

 

 

추천사

 

엔딩 크레디트를 닮은 책. 좀 이상하지만, 다른 표현을 찾지 못했다. 열 명의 필자가 풀어내는 열 개의 첫 영화 기억은, 어김없이 나의 기억과 포개져 매번 나를 어떤 시절 어떤 날로 데려가 그날의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멋진 영화를 보고 막 극장 문을 나서게 된 사람처럼 먹먹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근사한 질문이다. “당신의 첫 영화는 무엇입니까.”

- 유희경(시인)

 

 

 

차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초동 사는 잉그리드 버그만

김상혁

 

〈늑대와 춤을〉

가족 시네마

유재영

 

〈라 붐〉

〈라 붐 2〉

참 얄궂은 프랑스 양파 수프 

이명석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를 ‘말한다’는 것. 그 기분 좋은 무력함에 관하여

송경원

 

〈미이라〉

우물 이야기 

김남숙

 

〈신밧드의 대모험 호랑이 눈깔〉

그날 만났던 괴물들을 또다시 만나다 

박사

 

〈인디아나 존스〉

모험이 날 그렇게 했다

이다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라이온 킹〉 

〈라이온 킹〉 

〈십계〉

〈우뢰매〉

처음 본 것들의 꼬리를 잡고

서효인

 

〈패왕별희〉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드는 것들 

박연준

 

〈페드라〉 

여전히 봄이어서 꽃 몸살을 앓는 너에게 

강수정

 

 

 

작가 소개

 

김상혁

2009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산문집 『만화는 사랑하고 만화는 정의롭고』가 있다. 10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좋은 영화란 지루한 영화라고 말했던 선배 시인이 떠오른다. 나도 똑같은 생각이다.

 

유재영 

2013년 민음사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로 등단. 소설집으로 『하바롭스크의 밤』, 『우리가 주울 수 있는 모든 것』, 에세이집 『한 줄도 좋다, SF영화-이 우주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가 있다.

 

이명석

1970년생. 경북의 소읍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문화잡지 《이매진》 수석기자를 하며 영화 담당을 했고, 웹진 《스폰지》 편집장을 거쳐 전업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씨네 21》의 ‘씨네꼴라쥬’ 등 영화 패러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저서로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모든 요일의 카페』, 『논다는 것』, 『어느 날 갑자기, 살아남아 버렸다』, 『생각하는 카드』 등이 있다. 

 

송경원

영화 전문지 《씨네21》 기자이자 영화 평론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를 말한다는 무력감을 즐겼다.

 

김남숙

2015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이젠』이 있다. 보았던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도 무우우서운 영화를 보면 무우우서운 꿈을 꾼다. 

 

박사

책, 문화, 그리고 삶에 대해 읽고 겪고 중구난방으로 생각하고 쓰는 작가이다. 흥미를 끄는 모든 일에 기웃거리고, 그 일들을 다시 글로 쓰다 보니 출간한 책이 두 자릿수를 넘었다. 저서로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빈칸 책』, 『은하철도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등이 있다. 그림, 전각, 바느질 등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고,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요즘은 부처를 덕질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것을 즐겨 ‘친구 없는 자들의 친구’로 불린다.

 

이다혜

세상 모든 이야기의 헤비 유저. 『아무튼, 스릴러』,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코넌 도일』, 등을 썼고, 옮긴 책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있다. 영화 전문지 《씨네21》 기자.

 

서효인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아무튼 인기가요』 등이 있다. 시를 짓고 글을 쓰며 책을 꿴다. 와중에 딸아이와 가끔 영화도 본다. 

 

박연준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대체로 태평하고 이따금 종종거리며 산다. 숲길 걷기, 사물 관찰하기, 고양이 곁에 앉아있기, 발레를 좋아한다. 열두 살 때부터 홍콩 영화를 너무 많이 봐 안경까지 쓰게 되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공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등이 있다.

 

강수정

대학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입신양명에 뜻한 바 없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출판계에 발을 들였다. 출판사와 잡지사 등을 전전한 끝에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엄벙덤벙하는 성격과 달리 말을 고르고 뜻을 옮기는 작업이 잘 맞았고, 영광스럽게도 존 버거와 허먼 멜빌, 알베르토 망겔처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러 작가의 글을 우리말로 옮길 기회를 누렸다. 이제는 그저 틈틈이 일을 하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한량의 삶을 꿈꾸고 있다. 영화 에세이 『한 줄도 좋다, 가족 영화』를 썼다.

 

 

 

책 속에서

 

‘주말의 명화’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곡이 토요일 늦은 밤 TV에서 흐를 때면 내 심장은 터져나갈 듯이 뛰었고, 그토록 흥분했다는 사실을 가족이 아는 건 어쩐지 싫었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의 방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어서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p.10

 

심지어 그 방에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동안만은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깊은 애정마저 느꼈던 것 같다. 영화에 빠져 있을 때 가족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 않는 그들의 옆모습이 나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주곤 했다. p.20

 

비디오 대여점의 첫인상은 좀 어둡고 습했다. 그 느낌은 연소자 관람가에서 중학생 이상 관람가와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가 뒤섞인 구역을 지나고 미성년자 관람불가에 다다르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황급히 연소자 관람가 코너로 돌아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p.28

 

형이 비디오플레이어 앞으로 가서 되감기 버튼을 누르자 맹렬한 소리를 내던 기계는 잠시 뒤 테이프를 토해냈고 문을 열고 머리를 내민 테이프에선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뒤에 생소한 장면을 하나 더 목격했다.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p.32

 

내가 살던 읍엔 극장이 하나 있었다. 항상 영화를 틀지는 않았고, 정치 집회나 약장수 공연 같은 걸 하면서 간간이 철 지난 필름을 걸었던 듯하다. 옛날 신문을 뒤적이니 지구당 대회에 깡패들이 들이닥쳐 수십 명이 다치는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어쨌든 방학식을 하는 날엔 만화영화를 틀었다. p.41

 

〈더티 댄싱〉의 춤을 따라 하는 남고생들과 〈라 붐〉을 본 뒤 비를 맞고 걸어가는 남고생들 중에 어느 쪽이 더 징그러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p.44

 

나의 첫 영화를 떠올리면 말의 무기력함이 먼저 생각난다. 신비로움이라고 해도 좋겠다. p.56

 

영화는 물질이 아니다.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내용도 아니다. 그날의 날씨, 영화를 보러 가기까지의 시간, 극장의 분위기, 낡고 불편한 극장 의자의 삐거덕거림,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극장 밖을 나섰을 때 뇌리를 스치는 생각까지, 모든 체험이 영화다. p.62

 

여자에게는 〈미이라〉 영화표 두 장이 들려 있었고, 여자의 눈에서는 포스터 속의 브렌든 프레이저와 레이첼 와이스보다 더 깊은 우물이 보였다. 그러니까, 우물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우우무울이라고 말할 정도의 슬픔이 여자에게서 느껴졌다. 여자는 왜 매번 우물이 아니라, 우우무울이었을까. 나는 해앵복한데, 여자의 우우무울을 생각하면 나는 자아아꾸 조용한 아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p.74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마음을 가라앉힌 엄마는 내게 “영화는 어땠어?”라고 물어봤다고.

나는 간명하게 세 줄로 영화를 요약했다. “막 달려가는 거야. 막 쏘는 거야. 그리고 막 죽는 거야.” 아쉽게도 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아마도 내 인생의 첫 번째 영화였을 텐데. pp.84-85

 

모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낯설고 신기한 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미지의 땅, 미지의 보물, 미지의 인연. 책도 영화도 그래서 좋아하기 시작했다. p.96

 

영화가 끝나면 신나고 나른한 기분에 취하는데,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다가 나의 모든 꿈과 희망을 말하고 싶다가 했다. 그런 나를 데리고 극장을 다니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영화를 볼 때마다 주인공의 직업을 갖고 싶다고, 영화에 나오는 장소에 가보고 싶다고 혼이 빠져 수선을 떠는 어린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p.100

 

지금은 당연한 일이 예전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많은데 영화관의 자리가 그러할 것이다. 한때는 먼저 앉은 사람이 그 좌석의 임자가 되었다. 상영관 문이 열리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종종걸음을 하거나 뛰고, 심지어 가방을 던졌다. p.119

 

내가 기억하는 첫 영화는 없는 것 같다. 허망한 결론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첫 영화는 아마도 할머니인 듯하다. 랄프와 바넬로피처럼 랜선과 와이파이를 타고 온 세계를 떠돌면서 당신이 있는 요양원에는 가지 못한다. 내게 가장 이타적이고 그래서 가끔 이기적이었던 당신의 그곳 자리는 과연 명당일는지, 알 수 없어서 가끔 마음의 스크린이 시커멓다. 시커멓게 잊은 채로 시간이 간다. pp.121-122

 

우리가 본 영화들은 우리를 통과해 지나가지만, 모두 다 지나가는 건 아니다. 어떤 장면, 어떤 대사, 인물의 눈빛, 목소리, 배경, 음악, 그리고 그 영화를 보던 시간이나 장소,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문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든다. p.126

 

누군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를 물어보라. 이야기 중에 그를 이루는 구성 성분 중 ‘씨앗’을 보게 될지도 모르고 그가 자란 시대의 얼굴, 문화의 흐름이 ‘같이’ 따라와 개인의 풍경을 보여 줄 수도 있을 테니까. p.132

 

그리고 실제로 세어볼 수 있다면 알게 뭐람, 아흔두 번째이거나 백스물일곱 번째일지도 모를 〈페드라〉는 누가 뭐래도 나의 첫 영화였다. 유치원부터 따지든 어른이 되어서든 몇 명을 스치고 만나고 사귀었으면 무엇 하랴. 첫사랑은 따로 있는 것이다. p.142

 

 

 

 

지은이: 강수정, 김남숙, 김상혁, 박사, 박연준, 서효인, 송경원, 유재영, 이다혜, 이명석

분야: 한국 에세이/영화 에세이

판형: B6판 변형 (120*205mm)

제본: 무선

면수: 152쪽

ISBN: 9791187789345 (03810)

출간일: 2021년 8월 31일

출판: 테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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