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오후의 기분

불투명한 오후의 기분

수영장에 간 날에 글을 썼고, 수영장에 가지 않은 날에도 글을 썼습니다. 

수영장에 간 날에도, 수영장에 가지 않은 날에도, 지난 글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많은 시간 수영과 우울을 생각하고 쓰고 읽으며 겨울을 보냈습니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온 지독한 우울을 잊고, 버티고, 이겨내는 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온전히 이해받지도 못할 종류의 우울을 글로 쓰고 책으로 엮음으로써 

누구보다 저 자신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저를 이해하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책 속 문장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필요한 순간마다 건강한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서, 안 괜찮은데도 괜찮은 척 애를 쓰고 있었다는 걸. 진실은, 생의 의지를 나날이 잃어가고 있었다는 걸. 회복하려는 마음보다 포기하려는 마음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는 걸. 

‘세계는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모른다’ 중에서

수영하는 동안 나는 물의 보호를 받는다. 젤리처럼 부드러운 물이 내 몸을 감싸고 나를 중력으로부터 해방한다. 나는 가벼워진 몸으로 물과 하나 되어 망설임 없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순간의 나는 현재의 고정된 내 모습에서 벗어난다. 나는 더 이상 현재의 나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안에 잠재한 어떤 가능성으로만 나를 본다. 

‘수영하는 나는 왜 우울하지 않은가’ 중에서 

새로운 자세를 터득하는 일보다 지금 가진 실력으로 수영하는 시간을 꾸준히 늘려가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 남을 부러워해서 나를 그 모습으로 변화시키려고 애쓰기보다 지금의 나를 돌보고 아끼는 일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 

‘무리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꾸준히’ 중에서

요즘은 그렇게 우울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우울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는 믿음은 곧 수영이, 글쓰기가, 책 읽기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는 믿음과도 같다. 

‘우울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중에서

그날 이후로 6월은 줄곧 오후에 수영장을 찾는다. 오후 중에서도 네 시. 6월, 오후 네 시의 수영장은 오전의 수영장과는 달리 고요하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 분위기와 속도를 언제까지고 지켜나가고 싶다. 

‘6월, 오후 네 시의 수영장은’ 중에서

저자 소개

마운틴구구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책 만드는 일을 합니다.

산책을 좋아하고, 산책보다 수영을 더 좋아합니다.

『대파와 물안경』, 『하와이 수영장』, 『징검다리 건너듯 폴짝』을 쓰고 만들었습니다.

저자: 마운틴구구

출판사: 모양새

크기: 128 * 190 mm

쪽수: 88p

출간일: 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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